이은형 디모테오 신부(일산성당 주임신부)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 하느님의 축복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시작하면서 신자들에게 이 해에는 우리 삶이 스물스물(2020)했으면 좋겠다 말했는데 실제 삶은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아주 특이한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또 우리 신앙은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서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일상적인 만남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삶이 이어졌습니다. 정말이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으면 하는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종교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있었고,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일, 부활과 성탄을 신자들과 함께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방송을 통한 비대면 형식의 전례가 진행되기는 하였지만,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축제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습니다. 코로나19로 미사가 중단된 성당 Ⓒ연합뉴스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백신 개발과 보급이 시작되었고, 치료제도 곧 출시될 것 같다는 것입니다. 비록 시간은 더디지만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해 인사로 가장 많이 주고받는 인사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입니다. 올해는 소의 해이기에 이 덕담을 ‘복 많이 받으이소.’라고도 말합니다. 아무튼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신앙 안에서 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신데, 하느님께서는 아무에게나 마구 복을 뿌리시는 분이실까? 복을 받기 위해서는 복 받을만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결국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다른 표현으로 새해에는 복 많이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격려일 것입니다. 지난 성탄에 아기 예수님이 누워있는 구유를 성당 밖에도 예쁘게 꾸며놓았습니다. 지구본 형상의 반원을 만들고, 내부는 동굴 형태로 꾸민 후 각종 장식을 아름답게 배열한 다음 성상들과 아기 예수님을 그곳에 모셔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신자들이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를 바구니에 담아 함께 넣어 두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1월이 되어 날씨가 급속도로 추워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님 앞에 예쁜 집 모양의 카드가 비닐에 싸여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메모가 있었습니다. 그 메모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자신의 아이가, 이렇게 추운 겨울 아기 예수님이 너무 추워하실 것 같다며 집 모양의 카드를 예수님께 선물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예쁜 마음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도 추울 텐데, 밖에서 떨고 있을 예수님을 기억하며 고사리손으로 집모양의 카드를 만들었을 그 아이야말로 하느님의 축복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 주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은 베들레헴 외곽 작고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는데, 오늘의 예수님은 어디에서 태어나실까요?’라는 질문에 상당수의 아이들은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자들 사이에서, 혹은 외곽 공장의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서 태어나실 것 같다는 응답을 하였습니다. 대다수가 성탄 축제에 들떠 있을 때,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 아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재난 상황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양극화는 더더욱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그늘 속에서 더더욱 추위에 떨고 있을 우리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백신 보급으로 인해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신 사재기 현상이 국가 단위에서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의료체계가 미비하여 전염병의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되어 있는 가난한 국가들은 백신을 언제쯤 공급받을지 요원하기만 합니다. 추운 겨울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합니다. 이 추위를 피하지 못해 큰 고통을 겪는 우리의 이웃들은 과연 누구인가?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며 굶주림과 헐벗음에 신음하는 우리의 이웃들은 어디에 있는가? 전쟁과 국가적 폭력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매일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시며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여기 있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구유에 예쁜 집을 만들어 넣어준 유치원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떠올립니다. 나보다 더 힘든 우리의 이웃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 이 시대의 예수님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 해서 하느님의 복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이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