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베드로) 신부 | 민족화해위원장 2000여 년의 그리스도교의 역사 안에서 전쟁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 ‘일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교리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이뤄졌던 것처럼, 전쟁에 대한 가르침도 가변적이었습니다. 교회가 전쟁에 대해 취했던 입장은 십자군 전쟁(crusade)이나 정의로운 전쟁(just war)에서부터 ‘내키지 않는 슬픈 전쟁(reluctant and mournful war)’, 비폭력 저항(non-violent resistance), 소명으로서 평화주의(vocational pacifism)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에밀 시뇰, <1099년 7월 15일 예루살렘을 탈환한 십자군>, 1099년 작. 이 가운데 전쟁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은 십자군 전쟁 혹은 성전입니다. 여기서 교회는 전쟁을 기획하거나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교회가 전쟁이라는 ‘악’을 주도적으로 실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신앙의 수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성전(聖戰)의 정당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많은 경우에는 ‘세속’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았었다는 사실도 성찰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약성서나 초기 교부들의 문헌들에서는 세상의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주의’가 뚜렷이 드러납니다. 복음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 38-39)라고 명확하게 가르칩니다. 화해의 복음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맞으셨던 스승 예수님, 그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랐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불의한 박해 속에서도 비폭력 저항인 순교를 선택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7월 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러시아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작은 창문을 내어준다면”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에 먼저 갈 수 있다는 의지도 밝혔습니다. 전쟁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순례자 교황님과 함께 결코 정당할 수 없는 악한 전쟁의 중단을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