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요셉 신부 (덕정성당 부주임) 군종 사제로 지내고 있는 동기 신부를 만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동기 신부는 부대 안에 마땅한 숙소가 없어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경비실에서 주차증을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동기와 함께 경비실에 들어가 주차 문의를 하는데 경비원이 묻습니다. “두 분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친구세요? 가족이세요?” 저는 순간 ‘동기인데요.’라고 생각했지만, 동기라는 말은 우리에게 편하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들릴 수 있으니 ‘친구입니다.’라고 대답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 신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형제입니다!” 그리고 주차증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가족 방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사제단이 ‘한 족, 한 형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동기들은 더 가까운 사이인데 비록 친형제는 아니지만, 주차증을 발급받다가 형제 관계라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저는 형제라고 말해준 동기가 그 순간 너무 고마웠습니다. 예전에 어린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대부분 “가족”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에 대해 이유를 묻자 아이들은 그저 ‘소중하니까요, 사랑하니까요.’라는 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가족이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들로부터 받은 사랑도 있겠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과도 연결되는 듯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 때에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라고 말씀하셨고, 사람에게 필요한 가족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얻은 사람도 기뻐하며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 이렇듯 우리에게 가족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자 인생의 출발선부터 우리네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가족과 헤어진 후 못 만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슬픈 일일까요? 남과 북이 전쟁으로 갈라진 지도 70년이 넘었습니다. 이산가족의 수는 2005년 인구조사 때 70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아졌고, 올해 초에도 4만 6천 명에서 현재도 계속 줄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한이 얼마나 깊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을 생각하면 남북간의 관계는 하루라도 빨리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의 최우선 사안은 “비핵화”입니다. 그리고 지난 대선 때 윤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한미연합훈련 정상화, 대북 선제타격 능력 확보 등 북핵 대응력 강화와 원칙 있는 협상을 통한 비핵화의 실현,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억제를 위한 모든 수단 강구, 힘을 통한 평화 구축,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국제적 대북제재를 유지” 등의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시각에서 보면, 이라크, 리비아, 우크라이나처럼 핵을 포기한 국가가 전쟁, 내전, 정권 전복, 혼란 등을 겪으며 참혹한 모습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을 보았기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서로 자기주장만 강하게 하고 있으니 통일의 가능성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 체제로 가는 길도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작자 미상,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된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 6세기, 모자이크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으면 가족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세례를 통해서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한 형제, 자매로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호칭도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게 되지요. 비록 서로 다양성과 차이를 보여주고, 때로는 마찰도 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한 형제자매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아직 분단의 현실에 놓여있습니다만, 예로부터 우리는 한 민족, 한 겨레, 한 형제였습니다. 통일이라는 어려운 과제는 잠시 내려놓고, 당장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전쟁을 끝내놓고, 서로를 위한 교류를 하나씩 진행하면서 평화체제를 이룰 수 있는 한반도가 되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