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7지구장) 귀중한 보물인 평화를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사명, 특히 종교인들의 공통된 사명이기도 합니다. 종교인들에게 있어 평화는 남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교리와 가르침이 다르다 하더라도 ‘평화’라는 이름으로는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사회에서 종교간 대화를 할 때 가장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주제가 평화이기도 합니다. 종교에서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종교에 있어 평화는 진리와 멀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986년 10월 27일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운데 흰옷)가 주관한 ‘평화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 행사에서 전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이 한 데 모였다. 1986년을 UN은 ‘세계 평화의 해’로 선포합니다. 그와 관련하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그해 10월 27일에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을 개최합니다. 평화의 도시라 알려진 아시시에서 종교계의 주요 인사들이 함께 모여 평화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마다 그 평화의 기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종교 자유: 평화를 위한 조건 종교인들이 평화를 외칠 수 있는 근거는 ‘종교의 자유’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종교인들에게 있어 자유와 평화는 그 뿌리가 같습니다. 교황님은 담화문에서 종교 자유의 의미를 평화와 연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종교 자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그 존엄성의 핵심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이며, 인권으로 지어진 구조물의 초석입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고백하고 실천할 자유는 평화로운 인간 공존을 위한 핵심 요소가 됩니다. 평화는 진리에 대한 양심의 자유와 개방성에 뿌리를 둡니다”(1988.01.01. 제21차 담화). 따라서 종교의 자유가 침해를 받는다면 인간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것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한 대의도 손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인들은 자유와 평화가 위로부터 오는 선물 중 하나라는 것에 마음을 같이 합니다. 하느님이 주신 자유와 평화이기에 우리 모두는 형제애로서 존중과 연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평화에 관해 종교인들의 책임이 중요한 이유는 세계 평화를 위한 그들의 투신이 진정성을 갖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은 평화를 위한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함께 공유할 수 있습니다. “상호 수용과 존중의 정신으로, 이념의 위협과 폭력을 배척하는 것, 그 정신으로 백성과 민족 사이의, 더 특별히 평화 교육에 있어, 공동 활동과 협력을 위한 제도와 수단을 증진하는 것입니다”(제21차 담화). 교황님은 종교인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책임도 강조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우리에게 온 그 자유를, 그리고 초월적 기대에 우리 눈을 열어 주는 그 자유를 완전히 그리고 책임있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새 계명을 사는 데에 우리의 모든 힘을 다 기울여 투신해야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로 계몽되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놓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평화를 밝혀야 합니다”(제21차 담화). 성전에서 기도하는 방글라데시 가톨릭 신자들 Ⓒ ACN 평화를 건설하려면, 소수자를 존중하십시오 제22차 담화문의 주제는 ‘소수민의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수결이라는 이름으로, 때때로 우리는 적은 수의 의견이나 입장을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숫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권리와 주장이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평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황님은 평화에 있어 소수민에 대한 물음을 진지하게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소수민에 관한 물음이 눈에 띄게 중요해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 결과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선의의 모든 사람 편에서는 소수민에 관한 물음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1989.01.01. 제22차 담화). “공동체들은 따로따로의 문화 전통, 종족과 인종, 종교적 믿음, 혹은 역사적 경험들로 자신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공동체들로서 소수 집단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 안에 존재합니다. 비록 대단히 작은 집단이라 하더라도 그 고유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확인 할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에 훌륭하게 통합된 그런 집단들이 있습니다”(제22차 담화). 교황님은 적은 수의 구성원이라도 국가와 사회 안에서 존중받아야 할 그 이유가 있으며, 이에 대한 두 가지 기본 원리를 제시합니다. “첫째 원리는 종족의 기원, 인종의 기원, 문화의 기원, 민족의 기원, 혹은 종교적인 믿음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지닌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입니다. 둘째 원리는 인류의 근본적 단일성에 관계됩니다. 인류의 단일성은 창조주이신 한 분의 하느님께 기원을 두기 때문입니다”(제22차 담화). “한 인류 가족 안의 평화는 일종의 건설적인 발전을 필요로 합니다. 평화는 개별 인간, 그리고 백성들로서 우리를 특징 짓는 것을 발전시키도록,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을 발전시키도록 요구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회 집단 편에서 보자면, 국가로 구성되었든 혹은 그렇지 않았든 평화는 하나의 평화로운 세계라는 건물에 도움이 될 태세를 요구합니다”(제22차 담화). 소수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배제의 고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문화와 소수의 특별한 상황이라는 존중만이 평화로운 사회,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대화와 협상이 평화에 이르는 필수적인 경로이듯이 소수 집단에 대한 이해와 대화가 그들을 ‘평화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평화 건설에 있어 한 사람도 배제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리고 어느 집단도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이 사명, 곧 일치시키는 사랑이라는 사명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제22차 담화). 우리 모두가 평화를 이루는 주체이자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3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로마의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공동체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 Ⓒ 바티칸 뉴스 교황님의 마지막 호소처럼 우리도 평화라는 큰 건물의 ‘작은 모퉁이 돌’이라도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가 훨씬 더 참된 평화가 되게 해달라고, 그리스도이신 그 ‘모퉁이 돌’ 위에 세워진 평화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제22차 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