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인류학자) 자유로 성동IC에서 잠시 빠져나오면 삼국(북한, 중국, 한국)의 손길이 닿은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 있다. 이를 소개하는 내용을 옮겼다. 성당 제대 압시대 유리 모자이크화는 북한 최고의 기량을 갖춘 평양 만수대 창작사 벽화창작단 소속 공훈작가 등 7명이 중국 단둥에서 40일간 밤잠을 설치며 제작한 것이며 (한국 성당) 현장에서의 부착 작업은 장긍선 신부와 남한 미술가들이 무려 5달에 걸쳐 부착하였다.(《참회와 속죄의 성당 홈페이지》, http://sd.uca.or.kr/chamsok/) 성당은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중국 단둥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 만남의 방식과 그 결과물을 품고 있다. 남북이 예술품을 함께 만들면서 산 세월이 숨 쉬고 있다. 단둥에서 참여 관찰을 해온 나는 자연스레 이 역사에 스며들었고 묻어나는 남북 만남을 그릴 수 있었다. 성당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서면 성동IC 주변부터는 지역의 특성이 달라진다. 자유로를 기준으로 왼쪽은 민통선 이북이고 오른쪽은 민통선 이남이다. 한강과 멀어지고 임진강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철조망 명칭이 바뀐다. 재질은 같으나 명칭이 다르다. 이전까지는 일명 한강 하류 경비 철조망(철책)이고 여기서부터는 민통선 철조망(철책)이다. 평지인 자유로를 달리면서도 왼편으로 임진강 너머의 북한 마을이 어렴풋이 보인다. 오른편으로 헤이리 예술마을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품었던 의문이 이어진다. 두만강과 압록강이 흐르는 지형에 따라 중국과 북한의 마을이 가깝고 멀기도 함을, 때로는 같은 생활권임을 나는 약 20년 동안 기록해오고 있다. 그러나 DMZ의 4km보다 짧은 거리에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북한과 한국 마을을 모르고 지냈고 그 배경을 알아보지 않았다. 핑계는 있다. 두 사이를 가로막는 철조망 때문에 현장에서 파악하기 힘들었다. 인터넷 지도의 거리 재기 기능을 사용하기 전에는 두 마을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운지를 몰랐다. 다른 변명도 있다. 한국 사회에는 임진강 너머의 북한 마을을 부르는 명칭이 있다. 선전 마을이다. 그 단어가 불편했기에 더 알려고 하지 않은 실수를 해왔다. 그렇게 외면할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사람들과 함께 북한 마을을 보기 위해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갔으나 딴짓만 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이제야 그 공간에 무엇을 봐야 하는지 알아가고 있다. 성동IC를 지나면 임진강은 도로에서 멀어진다. 자유로 옆 철조망 너머의 농부는 북한 사람이 아니다. 한국 사람(주로 파주 탄현면 여섯 개 마을 거주)이 농사짓는 풍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러니까 철조망 너머에 막 벼 추수를 마친 장면을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벌판이 있다. 나중에 어림 계산을 해봤다. 여의도 두 배 면적인 약 150만 평이다. 파주 평화누리길에서 만난 철새 임진강 위로 새들이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벌판과 임진강 사이에 또 하나의 철조망이 멀리 보인다. 드넓은 벌판이 철조망으로 포위돼 있다. 여기는 임진강 이남이면서 민통선 이북 지역에 해당한다. 그 안에서 한국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다. 벌판으로 가는 통로가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 길 어딘가에 군인이 검문하는 공간이 있고 주민들은 그곳을 “토끼굴”(《파주바른신문》 2019년 5월 23일자, “‘토끼굴’ 출입 검문 끝내려나”)이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자유로는 철조망 너머 벌판 논두렁으로 가는 길목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압록강에서 보았던 철조망 너머의 논밭 풍경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가 끝나도 임진강에 기대어 농사짓는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나는 기록하고 있다. 두 강이 다르다고 성급하게 판단했는데 압록강과 자유로 임진강이 닮은 구석도 있다. 물론 그곳에 있는 철조망의 성격은 다르다. 자유로를 가운데 놓고 왼편에는 철조망 너머 농사짓는 벌판과 (군사시설) 촬영금지 경고판, 오른편에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공존한다. 안개가 끼지 않은 날에는 북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인다. 2020년에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통일로 가는 경기도”라는 문구와 함께 “개성 20km, 평양 160km”라는 옥외 대형 안내판이 이 지역이 북한 땅과 가까운 곳임을 직감케 했다. 2021년 어느 날, 이 안내판은 철거됐다. 파주 내포리로 접어들면서 철조망 너머 논들이 잠시 사라지고 오른편으로 음식점, 아파트 그리고 전원주택 단지들이 들어서 있다. 문산대교를 넘자마자 임진강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향하는 전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2020년까지 나는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송전탑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는 전선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자유로 임진강 너머의 산하를 복기하곤 한다. 그곳에 그동안 구분하지 못했던 세 풍경이 이제는 보인다. 당동IC에서 통일대교까지는 약 5km 남았다. 자유로는 편도 2차선으로 줄어든다. 임진각 주변이 나타나면 자유로 끝자락이다. 서울에서 자유로를 달리면 마지막으로 판문점으로 향하는 1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교통표지판은 전방에 민통선 지역이기 때문에 미승인 차량 Ⓒ 강주원 자유로이자 77번 국도인 이 길은 여기에서 1번 국도와 만난다. 판문점과 남북출입사무소를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교통표지판이 있다. “전방 1.5km부터 민통선 지역임(미승인 차량 회차)”이라는 글씨와 직진 표시의 그림 위로 빨간색의 “X”가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복잡하게 안내하는 교통표지판이 있나 했다. 정확하게 이해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위 내용 가운데 일부를 잘못 해석했음을 알았다. 길이 막혀 있음을 표시한 “X”가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 해당하지 않음을 임진강 너머의 삶을 통해서 배워가고 있다. 승인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누구에게는 열려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