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 수료) 중국 투먼 세관과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을 연결하는 다리 Ⓒ 노컷뉴스 자료사진 수년 전 북한과 이웃하고 있는 중국의 접경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지금과 비슷한 장마철이라 산과 들은 푸르렀고, 비도 보슬보슬 자주 내렸다. 며칠 간의 일정 중 흐린 날이 많아 가시거리가 길지 않았지만, 강 하나만을 사이에 둔 거리감은 건너편 북한을 관찰하기에 충분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시골 마을들과 가로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황토색 짙은 민둥산이 보이는 쓸쓸한 풍경이었다. 문득 중국인 관광 가이드가 입을 열었다. “저기 보이는 산에 나무가 없는 이유는 북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기 위해섭니다. 나무가 많으면 시야를 가리니까, 그래서 나무를 일부러 안 심은 거에요.” 듣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가이드의 말에 반박이나 질문을 덧붙이지 않았다. 일행들의 안타까움과 걱정의 눈빛을 읽었나 보다. 아픈 아이를 두둔해 주는 듯한 가이드의 발언은 북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짠하게 만들었다. 조선족인 관광 가이드는 우리 말이 유창했다. 그는 모름지기 북한과 가까운 접경지역에서 태어나 부모들로부터 북한과 경제적 교류도 활발했고, 어려울 땐 도움도 줬던 그 옛날 북한의 얘기를 들으며 컸으리라. 지금의 가난한 북한처럼 중국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지라 동병상련의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북한 '식수절' 나무심기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해마다 봄과 가을 나무심기 총동원 기간을 정해놓고 모든 기관, 기업소, 협동농장들이 나무심기와 함께 강하천 및 도로 정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이 절정이던 1996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중앙당 일꾼들과의 회의에서 봄가을 나무심기 기간을 계기로 전당 · 전군 · 전민이 떨쳐나 나무심기와 강하천 정리, 도로 정비를 비롯한 국토관리 사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큰물로 인한 피해가 예전보다 커진 것도, 강하천 제방뚝(댐)이 터져 토지가 잠기거나 유실되는 것도 산에 나무가 없는 탓이라며 일꾼들을 다그쳤다. 그러나 북한에서 온 나라가 동원되는 사업은 비단 국토관리 분야만이 아니다. ‘농촌지원’이라 불리는 농사도 그렇고, 각 도, 시, 군에 한 개 이상씩 건설되는 ‘발전소·염소목장건설’도 그렇고, 심지어 모든 공장 · 기업소에서 매해 과제로 떨어지는 ‘충성의 금모으기운동’도 그렇고. 1년 365일이 모자라게 느껴질 만큼 북한에서 하루하루는 ‘전투’와 ‘총동원’의 연속이다. 더욱이 산림의 황폐화는 ‘고난의 행군’ 시기 아사(餓死)한 북한의 수많은 목숨 다음으로 꼽을 만큼 경제위기로 인한 참혹한 결과 중 하나다. 1990년대 북한의 전 지역을 휩쓴 경제위기는 사람들을 산과 들로 내몰았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산나물은 물론 먹을 수 있는 풀이란 풀은 죄다 뜯고, 송기(松肌)를 벗겼으며, 인민들의 생활을 책임진 당에서는 급기야 가축 사료나 식용 가능한 풀을 섞어 만든 대용 식품까지 개발해 선전하기도 했다. 대용 식품의 레시피가 인민반을 통해 전달됐고, 공영방송인 조선중앙TV는 시청률이 높은 저녁 시간대에 직접 달개비(닭의장풀)와 같은 식용 가능한 풀을 소개하기도 했다. 전기가 끊기는 시간이 길어지고 땔감이 부족해지자 북한의 산과 들은 더욱 벗겨져만 갔다. 국가의 계획과 공급체계에 익숙해 있다가 아무런 대비 없이 맞은 빈궁(貧窮) 속에서 특히 산은 북한 주민들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다. 그렇게 산은 벌거숭이로 변했고, 동시에 장마철만 되면 각종 산사태와 침수로 인한 피해가 커졌다. 2000년대 중반 필자가 거주하던 지방의 한 도시에서는 산사태로 3층짜리 아파트의 1층과 2층 가운데 부분이 토사로 뭉텅 쓸려가면서 여러 가족이 사망하고 다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금도 폭우가 쏟아지면 부엌이 물에 잠기는 단층집들이 적지 않다. 2016년 북한 함경북도 홍수피해 현장 Ⓒ BBC코리아 장마철이 되면 민둥산 주변을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고, 이는 주민들의 생활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며, 피해복구 과정에서 다시 산을 해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심각하다. 더욱이 도로 포장률 20% 미만인 북한에서 장마철 폭우나 태풍에 의한 도로 피해도 적지 않다. 해마다 나무를 심어도 오늘 당장이 급한 사람들은 그 나무를 뽑아 땔감으로 쓰거나, 그 자리에 곡식을 심어 가꾸기에 급급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식목일처럼 매해 같은 장소에 나무를 심는 일이 10년 넘게 반복되고 있다. 나무심기도 중요하지만, 심은 나무를 살리고 보호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선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로 우리나라의 피해가 심각한 가운데, 8월 중순 이후 북한에도 폭우가 예보되어 있어 우려스럽다. 장마철 북한의 피해가 남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사전 통지 없이 황강댐을 방류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장마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남북의 교류는 필수적이나, 한반도에 드리운 구름은 언제나 가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