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20기 상임위원) 10월은 짐토버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들의 팬을 자처하는 무리인 ‘아미(ARMY)’의 활동을 찾아보면 참 대단하다. 단순히 좋아하는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아미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부여하고, 이 공유된 정체성은 팬덤을 하나로 묶어버린다. 불특정 다수의 자발적인 조직화가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현실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발현된다. 예컨대 BTS의 한국 노래 가사를 다수가 대가 없이 공동으로 번역해 배포하고, 특정 멤버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행사를 기획하며 모금을 비롯한 이에 수반되는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 사진 1 )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 위치한 걸리버(Gulliver) 쇼핑몰의 LED 미디어 스크린에 지민의 생일 축하 영상 Ⓒ 한경닷컴 특히 10월은 지민이라는 멤버의 생월인데 아미에겐 ‘짐토버(Jimin+October의 합성어)’로도 불린다. 과거 진행된 생일 축하 행사를 살펴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생일 축하 광고가 전 세계 곳곳에 게시되는 것은 기본이며, 건물 전체를 지민 테마파크로 조성하기도 했다. 중국 광저우 지역 빌딩 34개가 동원된 조명쇼, 뉴욕 타임스퀘어의 생일 광고, 필리핀 드론쇼, 러시아 루즈니키 스타디움의 점등식 등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국가와 장소에서 짐토버 축제가 열렸다. 아미에게 성별과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BTS가 전하는 ‘서로 사랑하자’는 메시지와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행동을 공유할 뿐이다. 최근 흥미로웠던 논의 중 하나는 세계 곳곳의 권위주의 체제 국가에서 한국 콘텐츠(이하 K콘텐츠)의 유통을 달가워하지 않거나 정책적으로 불허하는 것을 고민해 본다는 점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팬덤이 현실 정치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단지 아미는 ‘패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싸운다(<Not Today> 가사 中)’는 BTS의 메시지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 뿐이지만 말이다. Ⓒ BTS 'Not Today' Official MV 갈무리 구체적인 사례는 다양하다. 알제리 대통령 5선 연임 반대 시위에 BTS의 <Not Today> 가사가 인용되고, 미얀마, 홍콩 등 최근 민주화 시위가 진행된 지역에 민중가요(혹은 저항 가요)로 BTS의 곡이 투쟁가처럼 불리는 사례, 아미가 주도한 인도네시아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온오프라인 시위, 기후 변화에 저항하기 위해 브라질 아미가 만든 비영리 환경 단체 ‘아미 헬프 더 플레닛’ 등 이들의 활동에는 ‘정치’적인 움직임이 관여되어 있다. 저항적이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서로를 존중하며, 혐오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자’는 BTS의 메시지는 해당 지역의 정치와 사회의 발전을 자극한다. 우리와 연결되지 않은 북한의 아미 BTS의 존재와 한국의 주요 드라마나 아이돌의 작품은 DMZ를 넘어 북한의 젊은 세대에 침투한 지 오래다. 북한 정부 당국 차원에서 젊은 세대의 남한 콘텐츠 노출을 심각하게 여긴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지표는 작년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K-Pop을 악성 암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사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점을 공표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 군인이 장기자랑으로 BTS의 ‘피 땀 눈물’을 선보였다가 보위사령부에 체포되기도 했고, 지난 12월에는 남한 드라마를 보는 이에게 최대 15년의 노동형이 내려지며 남한 스타일로 춤추거나 노래하는 행위는 2년 노동형에 처해지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아직 우리와 연결되지 않았을 뿐 북한에도 아미는 존재하는 셈이다. 북한 주민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남한의 대중문화를 정말 많이 접해왔으며 BTS는 북한의 젊은 세대가 경험한 수많은 한국 아이돌 중 한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아미가 남한의 아미는 물론 전 세계 아미와 함께 연결되어 BTS를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그 이유는 인권 문제와 같이 북한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불거지는 여러 문제들은 외부의 개입을 통해 해결되기에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체제 내부적인 변화의 염원에 따라 바뀌어야 할 성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 <Not Today>를 부르는 북한 청년 무리가 나타나 만들어 갈 체제개선은 단기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 우리, 같이 놀자! 나는 북한과 남한의 주민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결국 누구나 쉽게 접하고 소화할 수 있는 문화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한민족이라는 정서를 공유한다는 믿음과 달리, 실제 북한과 남한의 생활과 문화는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벌어진 상황이다.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적응할 때, ‘같은 언어를 쓴다’는 믿음과 별개로 남한에서 쓰이는 용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증언이 그 일례일 것이다. 북한과 남한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점점 무디어져 가고 양자를 이을 수 있는 자산이 없어진다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는 주요 디딤돌 중 하나가 고갈되어 가는 것과 같다. 비핵화에 나서는 조건으로 북한에 식량을 비롯한 여러 인프라를 지원하겠다는 구상이 담대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조건부 제안 자체가 용감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담대한 접근은 상대가 어떻든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고 조건 없이 추후 불거질 위험 인자까지 안고 승부를 걸어보는 것일 테다. 국군을 믿고,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믿으며, 북한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거대한 발걸음에는 ‘너희가 어떻든 일단 우리 전 세계인들이 모두 열광한다는 BTS 노래를 들으며 같이 재밌게 놀아보지 않을래? 머리 아픈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먼저 놀아보자!’라는 유연한 접근일 것이다. BTS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남한과 북한 주민이 세계인과 함께 열광하고 ‘덕질’할 수 있는 대상이 공유되는 것만으로도 접점이 모호해지는 남과 북의 거리를 다시 이어낼 끈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니. 류경 호텔에 누구라도 좋으니 국내 아이돌의 생일 축전을 올릴 수 있는 그날까지, 파이팅! 나눔 주제 1. 북한 방송 개방을 놓고 여러 이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의 방송을 국내에서 보도하는 것을 찬성하십니까? 한국 사회에 북한 방송이 개방되는 것이 미칠 영향은 무엇이 있을까요? 2. 우린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북정책에 다분히 ‘목적’을 두곤 합니다. 북한의 변화, 북한 체제의 붕괴, 북한의 비핵화 등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목적을 염두에 두고 대북정책을 펼치기도 합니다. 목적 없는 정책은 없다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에서만큼은 남북이 모두 행복(happy)하고 평화(peace)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요? 의견을 여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