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정치학 박사)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남북이 서로 상대방 탓을 하며 미사일 발사, 한미일 군사훈련, 포사격 등 경쟁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언제 어떤 불행한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위태로운 형국이다. 한반도에서 평화 정착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이번 호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인 북미 관계 정상화가 안 되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한반도 평화는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관건이 북핵문제 해결과 연동된 북미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인데, 이게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간 줄기차게 미국과의 수교를 요구해 왔다. 북한의 경제 회생에 필요한 외자 유치에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기에 미국과 관계 정상화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1994년 ‘제네바 협정’, 2005년 ‘9·19 공동성명’, 2018년 ‘싱가포로 합의’ 등에 북한이 동의했던 것도 북미 관계 정상화의 희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북미 관계 정상화에 힘을 쏟지 않았다. 왜 그런 걸까? 답을 찾기 위해 필자는 미국의 조야 북한전문가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2022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종합토론(맨 왼쪽이 필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정현진 기자 미국이 북미관계 정상화에 소극적인 이유 첫째, 독재 정권이자 인권 탄압 국가인 북한과의 선린 관계 수립은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중시해왔고 외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북한은 3대째 권력을 세습하는 독재 국가로서 자국민을 굶기고 탄압하는 최악의 불량 국가이지 않은가? 미국 의회는 북한에게 아예 수교의 전제 조건으로 비핵화뿐 아니라 인권 · 위조화폐 · 마약 등 불법 행동, 미사일 · 생화학무기 등 광범위한 문제 해결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위 설명은 그간의 미국 외교 행태에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은 적대 국가였던 중국 · 베트남 · 쿠바 등과도 거리낌 없이 수교를 추진했다. 현재 미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자유 · 인권과는 먼 나라들이다. 미국은 자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나라와도 선린 외교를 추진했다. 둘째, 임기가 4년인 미국 행정부 입장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는 비용(cost) 대비 편익(profit)에서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 정부와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의회와 언론의 반대를 무릅써야 하는데 그 대가로 얻는 편익이 너무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 지도부를 신뢰할 수 없기에 감수해야 할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한다. 중국과의 전략경쟁 · 우크라이나 전쟁 등 수많은 현안이 산적한 미국의 외교 현실을 감안하면 일견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러나 북핵문제를 계속 방치해 동북아에서 핵확산이 이루어질 경우 세계적 핵질서(NPT)가 무너져 미국의 국익이 크게 손상된다는 점에서 단견이다. 셋째,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북미 관계 정상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분쟁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에 세계 어디선가 전쟁이 발생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에서 북한의 군사 위협은 한국과 일본에게 위기를 불러일으켜 군비를 증강하게 하고 이는 미국산 무기 수입으로 연결된다. 만약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수립되면 군산복합체는 큰 시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남북 관계가 순항하고 남북 협력이 탄력을 받을 때 군산복합체가 방해를 했던 사례는 수없이 많다. 2018년 11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봄날을 구사하던 때 「뉴욕타임스」는 국제전략연구소(CSIS)가 북한의 미신고 미사일기지 13곳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1998년 8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창 탄력을 받고 있을 때 「뉴욕타임스」는 북한 금창리 지하 동굴에서 핵 재처리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1991년 여름 노태우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하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에게 특별 사찰을 요구했다. 남북한의 불화와 분쟁을 희망하는 일본 우익이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최대 후원자라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이러한 군산복합체 암약론을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넷째, 미국은 한반도가 분단된 채 남북이 적대하는 상태를 희망한다는 설명이다. 북한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는 남한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미국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종전선언 · 평화협정 등으로 전쟁 상태가 공식적으로 종료될 경우 주한 미군의 주둔 명분이 약화되고 유엔사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미일 동맹 ·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동북아에서 패권을 행사하는 미국의 전략에 큰 지장을 준다. 물론 북미 관계 정상화로 북한까지 친미 국가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너무 낙관적 예측이다. 실제로는 남북한이 화해 · 협력해 통일로 나아갈 경우 통일 한국은 미중 사이 중립을 취할 가능성이 크고 최악의 경우 중국 편에 설 수도 있다. 통일 한국이 확실히 친미라는 보장이 없는 한 한반도의 현상 유지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 미국이 북미 관계 정상화에 소극적이고 종전선언에 미온적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럼 평화가 절실한 우리 민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에게 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책임을 생각해 도덕적 의무를 다하라고 촉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자국의 국익에 따라 행동하는 국제 정치세계에서 이런 도덕적 호소가 큰 효과를 거둘 리 만무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국력이 신장돼 발언권이 커진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미국 행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방법이 효과를 거두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 남북의 교류 · 협력을 지지했던 페리 프로세스도 김대중 정부의 결연한 의지의 소산이었고, 부시 행정부 시기 강경한 대북 정책이 6자회담 등 관여 정책으로 바뀌었던 것도 노무현 정부의 결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1999년 5월25일 핵 협상을 위해 평양에 도착한 윌리엄 페리(왼쪽에서 두 번째) 당시 미국 대북 정책 조정관 Ⓒ 평양/AP 연합뉴스 나눔 주제 북미 관계의 정상화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가톨릭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