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 (인류학자)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그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표어는 “평화, 새로운 시작”과 “평화, 새로운 미래”였다. 둘 다 평화와 미래가 담겼다. 2020년 이후에도 평화라는 단어는 내 주변에서 넘쳐났다. 평화에 동사인 그리다, 말하다, 만들다, 열다, 소망하다, 걷다, 준비하다, 두드리다, 상상하다, 쓰다, 꿈꾸다, 품다, 생각하다, 만나다, 기원하다, 묻다, 답하다 등으로 표현을 달리한 세미나 혹은 행사를 알리는 이메일과 기사를 접하곤 했다. 물론 평화의 앞과 뒤에 붙는 형용사와 다른 명사도 있다. 지속 가능한 또는 봄이 대표적이다.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 통일부가 제작한 2022년 달력 표지엔 “평화를 쓰다, 통일을 그리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남북 관계 관련 업무에 참고해야 할 북한의 주요 일정 등”(《연합뉴스》 2021년 12월 31일자, “통일부 달력 맹비난”)이 담겼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세 번째 책을 뒤적거렸다. 책에는 2019년을 기준으로 세월의 흐름을 다룬 대목들이 있다. 이를 참고삼아 약 3년이 흐른 현재 남북 교류와 만남과 관련해 어떻게 평화롭게 지내왔는지 아니면 조금은 다르게 살아왔는지를 살펴보고자 마음먹었다. 나만의 2022년 달력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자료를 모아봤다. 이를 정리하고 보니 한국 사회가 지난 몇 년 동안 동사만 바꿔가면서 평화를 떠올렸음이 보였다. 평화와는 거리가 있는 시절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변한 바가 없기에 연도와 숫자만 바꿔도 상황은 그대로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세 번째 책의 표현 중 내용은 그대로 옮겼다. 연도를 2019년에서 2022년으로, 세월의 숫자는 3년을 더해서 바꿔봤다.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5·24 조치(2010년)가 여전히 통일부 홈페이지 화면을 채우는 것이 한국 사회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 약 12년이다.(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34쪽 참고)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에는 북한을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중후반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고정관념이 되어 존재한다. 그것은 약 28년 전후 과거의 북한 사회이지 지금 모습이 아니다.(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138쪽 참고) 2006년 10월부터 2017년 12월까지만 고려해도 총 10회에 걸친 유엔 안보리 제재와 2010년 5·24 조치 속에서 한국 사회는 살아왔다. 그 기간에 해당하는 지난 약 12년 동안 신의주에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올라가고 있었다. 〔…〕 북한 경제에 대한 압박과 단절의 상징인 대북 제재 약 16년 동안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한국 사회인지 나는 모르겠다. 단둥은 평양과 서울이 연결된 도시다.(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225-226쪽 참고) 2004년 신의주 2022년 신의주 짐 로저스(로저스홀딩스 회장)가 2016년에 언급한 “향후 20년” 가운데 이미 약 6년이 거의 흘러갔음을 생각했다. 2022년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는 그 지역(한반도·중국·러시아 3국의 접경)과 한반도 연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청사진에 주목한다.(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258쪽 참고) 통일부에서는 5·24 조치에 대해서 “실효성이 사실상 상당 부분 상실하였으며, (남북) 교류 협력 추진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통일부 홈페이지》)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12년째 그 이름 그대로 통일부 홈페이지에 과거가 아닌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 경제에 대한 고정관념은 28여 년 전의 인식에 뿌리를 두고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여건 속에서 대북 제재는 매번 강화되어 요지부동 그 자리를 16년째 지키고 있다.짐 로저스는 2022년에도 세계 3대 투자가이자 북한 전문가의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평창 평화 포럼, 여야의 국회의원들이 주최한 남북 평화 세미나 등에서 강연했다. 주제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발전”(《쿠키뉴스》 2022년 2월 21일자, “짐 로저스, 국회 남북 평화 세미나 참석”)이다. 짧게는 3년 넘게 평화를 내세우면서 한국 사회는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평화라는 단어 앞과 뒤에 붙었던 형용사와 동사들의 의미가 공허하게 다가온다. 이를 코로나19 탓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한편 달력에 담을 내용이 더 있다.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는 압록강의 강물을 품고 바라보면 거기에는 남북의 미래, 그 길로 나아가는 힘이 있다. 그 모든 걸 떠나 단둥에는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이 있다. 함께 어울려 살며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30년이 넘어가는 애증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없는 경험의 깊이다.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한지 나는 모르겠다.(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273쪽 참고.) 이 또한 세월의 숫자만 바뀌고 내용은 같다. 다만 보충 설명이 필요한 변화가 있다. 중국 단둥에서 한국사람은 줄어들었고 북한사람은 늘어났다. 한국에서 중국에 가기 힘들어졌고 중국에서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는 코로나19 변수의 영향이 맞다. 이로 인해 애증 관계는 덜 쌓이고 경험의 깊이가 얕아졌으나 한반도 밖인 단둥에서 남북의 만남은 비대면과 대면으로 이어졌다. 달력에는 기억하고자 하는 역사와 확정된 미래가 담긴다. 그런데 2019년에 이어서 2022년 현재에도 기념일이 되지 못하는 날이 있다. 여전히 달력에 채울 수 있는 날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2000년대) 그 시절처럼 평양에 한국 관광객이 가는 날은 언제로 기록될까?”(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77쪽)에 대한 답은 불투명하다. 한국 어린이들이 평양을 경유해 백두산에 올라가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는 순간에 대한 대북사업가의 기다림은) 가깝게는 문재인 정부 출범, 멀게는 2010년 5·24 조치부터 시작된 긴 기다림이었다.”(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97쪽)의 마침표를 달력에 아직 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료를 정리할수록 연도 혹은 월이라도 확정되었으면 하는 속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