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베드로) 신부 | 민족화해위원장 소련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1962)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대응으로 정치권에서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은 1958년 1월,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를 들여왔고 한때는 900여 발에 이르는 수의 전술 핵무기가 남한 지역에 배치됐었습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전술 핵무기 철수 비밀명령(1991년 9월 27일)으로 모두 회수하기 전까지 주한미군 부대에서 상당한 수의 전술 핵무기가 보유 · 운용됐던 것입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에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가 꼽힙니다. 1962년 10월, 위기가 파국으로 치달아 결국 핵전쟁이 발발했다면 미국과 소련에서 각 1억 명씩, 그리고 유럽에서는 수백만 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산이 있습니다. 미국의 국방장관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가 1964년에 의회에서 이와 같은 수치를 증언했는데, 여기에는 아시아에서의 핵전쟁 가능성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1961년 9월에 나온 미국 핵전쟁 통합 계획(SIOP 62)에 따르면, 소련과의 핵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은 중국의 핵무기 시설과 주요 군사기지 및 정치 거점을 자동적으로 공격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핵전쟁이 벌어졌다면 미국은 중국 및 북한 등의 동아시아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서도 핵공격을 감행했을 것이고 최소 1억 명 정도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이근욱, 『쿠바 미사일 위기 – 냉전 기간 가장 위험한 순간』 참조.) 북핵 문제의 해법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도 핵무기를 가지자는 ‘공포의 균형’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각각 수만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시절에도 핵전쟁의 공포가 있었으며, 남한에 천 개에 가까운 전술 핵무기가 배치됐었을 때도 전쟁의 공포가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 · 소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 성 요한 23세 교황은 “전쟁 무기의 균형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신뢰에서 참된 평화가 확립된다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평화가 객관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 올바른 이성의 외침이며, 대단히 바람직하며, 더욱 높은 유익을 인간에게 가져올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무기를 통한 ‘평화’라는 현실주의를 넘어서 진정한 평화를 믿는 신앙을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