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희 아녜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미래세대연구자모임 샬롬회 회원) 2017년 8월 12일, 1년간의 국제봉사교류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는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인종주의자들의 폭력 집회가 벌어졌다. 나를 비롯한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집회 영상을 봤다. 집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는 차를 보았을 때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이 사건으로 1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후 시차로 고생하던 며칠 동안을 인종주의자 집단이 어디에서 활동하는지, 동양인이 표적이 된 사건이 있는지를 찾으며 밤을 지새웠다. 미국 백인민족주의 지도자 리처드 스펜서가 샬러츠빌 집회 현장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인간을 향한 혐오는 늘 불편하지만, 혐오표현이 나를 향했을 때 그것은 공포가 된다. 크리스천 국제 포럼에서의 일이다. 유독 나와 사진을 찍을 때 눈을 가늘게 하던 독일인 친구는 ‘동양인은 모두 작은 눈이어서 생김새가 구분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양쪽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찢어 올리고 나서야 나는 이것이 인종차별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한 번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타보로 지역에 갔을 때 일이다. 2016년 발생한 허리케인으로 무너진 집을 고치는 봉사를 하러 갔을 때 만난 나이 지긋한 백인 할아버지는 한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그가 호텔 승강기와 지하철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며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을 때, 칼날처럼 박히는 이야기에 나는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식사 내내 벌벌 떨었다. 마을 교회 사람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였음에도 말이다. 혐오와 차별의 배경에는 상대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나와는 다른 사람, 즉 외부인을 향한 적개심과 공포는 혐오와 차별로 쉽게 연결된다. 그중 인종차별은 인종 · 민족 정체성에 우열을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정체성 분류를 통해 자신이 속한 내집단에는 우성을, 외집단에는 열성을 부여한다. 인종 · 민족 정체성의 구분 자체만으로도 “차별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차별 가능성이 개인적 또는 집단적 차원의 위협감과 연결될 때 인종차별이 발생한다. 우열을 가르는 민족성 구분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은 무시된다. 외국인 근로자가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외국인 혐오가 늘어갈 때, 내집단에도 있을 법한, 생계와 가족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연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아마도 지난 수십 년간 국제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었을 것이다. 그는 문명권을 구분하는 1차 기준을 종교로 설정했고, 세계 정치의 주된 갈등이 상이한 문명 집단들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그의 기준을 토대로 세계는 무슬림과 비 무슬림으로 나뉘었고,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대중에게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한편, <정체성과 폭력>의 저자 아마르티아 센은 ‛헌팅턴의 생각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현대 세계의 갈등의 주요 원인은 모든 사람들이 종교나 문화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고 믿는 그릇된 추정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추정에 대한 주장은 모두의 연대감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불화까지 조장한다. ’인간을 정확히 한 그룹의 구성원으로 보는 정체성에 대한 소위 고립주의식 접근법(한 공동체의 속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복수의 정체성을 살피지 않는 폐쇄적 접근법)은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을 오해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집단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개인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 아르마티아 센은 어떻게 으레 당연히 여겨지는 인종 · 민족 정체성 설정에 의구심을 품었을까? 2002년 구자라트 주 종교 폭동의 발단이 된 고드라 역 열차 화재 사건 Ⓒ newstof.com 센은 영국령 인도 제국이 해체된 마지막 날, 힌두 - 무슬림 사이에 있었던 폭동을 기억한다. 눈에 띄는 차이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정체성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상 구분할 수 없는 민중들 사이에 있었던 유혈사태였다. 살해하고 살해당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꾼이었고, 그들은 비슷한 지역에 살았고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다. 정체성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파악은 결국 갈등과 폭력을 야기한다. 센은 인간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축소시킴으로써 벌어지는 집단간 폭력에서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이들이 약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대립을 자신의 권력의 도구로 삼으려는 강자들의 명령에 의해 폭력사태가 선동되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머릿속에서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외국 친구들에게 ‛중국 애들은 어떻고, 인도 애들은 어떻고’라고 포럼 후기를 털어놓는 나를 발견했다. 고립주의식 정체성 설정에 대한 태도와 신념이 나의 사고방식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한 집단에 변치 않는 본질은 없다. 내 앞에서 눈을 치켜 올렸던 독일 친구 앞에서 나는 동양인 여자가 아닌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일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차이와 사이’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