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최근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응으로 ‘미사일 1만 발’을 확보하자는 군사 전문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유력 일간지에 실린 기고문에서 그는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하고 업그레이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 10년 안에 강력하고 정교해진 미사일 1만 발을 확보하길 제안한다. 율곡 이이가 제기했다는 ‘십만 양병설’처럼 ‘미사일 일만양탄설(一萬養彈說)’을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22년 10월 26일) 학계에서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외적에 대비해 10만의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십만 양병설’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들이 보는 역사책이나 학습만화에서 율곡과 충무공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이 자주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율곡의 ‘십만 양병설’을 들으면서 임진왜란 등의 전란을 겪은 이유가 조선의 ‘안보 불감증’ 때문이라고 배웠다. 현재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북한 당국도 군사력 강화의 목적을 안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대규모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응하기 위해서 미사일 발사 시험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평화가 아무리 귀중해도 절대로 구걸은 하지 않으리. 우리의 총창 우에(위에) 평화가 있다.”라는 북한 노래의 가사에서처럼, 북한은, 그리고 남한과 다른 나라들 역시 강력한 국방력을 통해서만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북핵 문제,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력 강화는 안보 딜레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 국가가 안보 불안을 느껴서 군사력을 키우면 대립의 상대방도 군사력을 강화하게 되고 결국 적대적인 쌍방의 안보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자국의 군사력은 방어용으로, 상대방의 군사력은 공격용으로 규정하면서 딜레마는 심화한다.첨단무기를 아무리 많이 갖춘다고 해도 안보 불안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남과 북이 그리고 동북아시아와 전 세계가 새로운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평화이지만,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신앙인들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