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7지구장)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마지막 주제는 ‘용서와 평화’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우리 모두에게 먼저 요청되는 것이 바로 ‘용서와 화해’가 아닐까 합니다. 용서와 화해 없는 평화는 온전한 평화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한국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우리에게 상처와 적대감과 분노의 감정을 심어 놓았습니다. 내년이면 정전 70주년을 맞게 되는 이 순간까지 그 적대감과 혐오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적대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용서와 화해’ 밖에 없습니다. 2022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위령미사(북한군 중국군 묘지) - 민화위 사제 걷기 몇 해 전부터 위령성월이 되면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에 자리한 북한군 · 중국군 묘지에서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해 왔습니다. 처음 이 미사가 드려질 때 몇몇 신자들은 ‘어떻게 적군들을 위해 미사를 드려줄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미사 강론에서 교구장님은 죽은 이들에게는 적군도 아군도 의미가 없으며 다만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할 뿐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상처에만 머물러 있다면 평화는 반쪽짜리 평화에 머무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반쪽의 평화는 평화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온전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2022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위령미사(북한군 중국군 묘지) - 민화위 사제 걷기 용서를 건네고 평화를 받으십시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평화를 위해 용서가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합니다. “인간 마음 안에 진정한 용서의 태도가 뿌리내리지 않는 한 그 어떤 평화도 시작될 수 없습니다. 용서가 없다면, 상처는 계속 곪으면서 더 젊은 세대에게 끝없는 원한을 불어넣고 복수를 향한 욕망을 일으키며, 새로운 파괴도 조장할 것입니다. 용서를 건네고 받는 것은 확실하고 영속되는 평화를 향한 여정에서 불가결한 조건입니다”(1997.01.01. 제30차 담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뼈저린 이 상처는 치유 받아야만 하는 상처입니다. 폭력과 전쟁으로 인한 이 상처는 우리 기억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 ‘기억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억의 치유를 이루지 못한다면 적대와 보복이라는 악순환을 끊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말씀처럼 보복이라는 치명적 악순환은 새롭게 발견된 용서의 자유로 대체되어만 합니다. 용서와 화해를 위한 첫걸음은 서로에 대한 차이를 받아들이고 서로에 대해 존중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렇듯 용서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영속하는 평화는 무엇보다 상호 수용과 마음으로부터의 용서 능력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적 공존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용서를 받아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모두 반드시 용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용서를 청하고 베푸는 것은 지극히 인간다운 일입니다”(제30차 담화). 2022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위령미사(북한군 중국군 묘지) - 민화위 사제 걷기 교황님은 용서의 전제 조건으로 ‘진리와 정의’를 말합니다. 가장 진실하고 고귀한 형태의 용서는 사랑의 자유로운 행위로부터 나오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에 따라 사는 삶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진리에 따라서 올바로 살지 않았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개선하고자 하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 용서와 화해는 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정의’입니다. 정의는 하느님의 법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계획에 그 토대를 두기에 정의로운 삶을 위해 우리는 화해할 수 있습니다. 교황님은 우리 모두가 화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일깨웁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화해의 토대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화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제30차 담화). “베풀고 받는, 용서의 강렬한 기쁨은 치유 불가능할 것만 같던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며, 이 관계들이 하느님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 안에 굳게 뿌리박게 해 줍니다”(제30차 담화). 용서와 화해만이 평화를 회복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한반도의 통일보다 우리가 먼저 걸어가야 할 길은 용서와 화해의 길이 아닌가 합니다. 용서와 화해의 길을 통해서만 우리는 분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해 줄 수 있으며 한민족임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 평화의 날 담화문 안에 담겨 있는 주옥같은 보물들을 발견하면서 평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70년 전에 멈추었던 한반도의 전쟁도 아직 종료되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있어 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전쟁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사실입니다. 평화 없이 우리의 삶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평화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입니다.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우리 모두에게 교황님은 제30차 담화문의 마지막 문구로 평화의 희망을 심어주시는 듯합니다. “용서를 건네고 평화를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