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 (인류학자)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에도 정부 기록이 있음을 2018년에 나는 처음 알았다. 통일부가 제작한 『2018 통일백서』에 <이산가족 상봉 현황> 통계표가 있다. 민간 차원의 생사 확인과 서신교환 그리고 상봉은 199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통계로 집계되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이 걸었던 그 길을 한국 사회도 걷고 있었다. 서신 왕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한국 사회의 이야기”라고 서술했다. “남북의 이산가족은 정부 차원의 만남 노력 혹은 남북 관계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152쪽)고 언급했다. 2022년 나는 약 3년의 통계가 추가된 『2021 통일백서』 부분을 찾아봤다. (1998년부터) 민간 차원에서 이산가족 교류를 하는 경우 경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 (현재) 생사 확인 시 300만 원, 상봉 시 600만 원, 서신교환 등 교류 지속 시 80만 원 범위에서 경비를 지원하도록 지원 금액 기준을 상향하였다. 2019년에는 총 19건의 민간 교류가 성사되었으나,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북·중 접경 지역의 통제가 강화되어 민간 차원 이산가족 교류가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통일부, 『2021 통일백서』, 통일부, 2021, 115쪽) 이와 함께 다른 표를 함께 살펴봤다. 누계인 2,918건과 약 34억 원이 넘는 지원 금액이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 건당 약 100만 원이다. 남북의 이산가족은 당면 과제이고 돈으로 다룰 일은 아니지만 이만한 가성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2020년에는 건수와 지원금이 “0”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2018년 이산가족상봉행사 Ⓒ 연합뉴스TV 이산가족의 고령화와 함께 민간 차원의 교류도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고 생각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백서 부록에 수록된 <이산가족 상봉 현황> 표를 찾았다. 통계는 1985년부터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아래의 표에서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만 인용했다. 여기에서 “계”는 1985년부터의 합산이다. 표를 들여다보니 2020년 민간 차원의 생사 확인과 상봉은 “0”이다. 하지만 서신교환은 통일부의 지원 건수와 금액인 “0”과는 다르게 숫자가 있었다. “4”건이 집계돼 있었다. 즉 정부의 경비 지원은 없었으나 남북 이산가족은 서신을 주고받았다. 2021년의 통계가 궁금했다. 이 또한 통일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21년, 서신교환 건수는 “3”건이다. 그러니까 2020년과 2021년에도 4건과 3건의 이산가족 서신교환이 있었다. 아래의 표에서 “기타”는 성묘 방북이다. <이산가족 상봉 현황>(단위: 건) 『2021 통일백서』에 수록된 남북 관계 주요 통계들은 2008년(금강산과 개성 관광객 현황)과 2016년(개성공단 현황)에 숫자가 멈추거나 세부 항목에서 어떤 연도는 빈칸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2020년 칸에는 통계가 없음을 표시한 “-”가 유달리 많다. 이를 고려할 때 코로나19 상황에도 빈칸이 없는 항목에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이는 민간 차원의 서신교환이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아니었으면 1건이라도 통계가 늘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더구나 이산가족의 고령화를 고려하면 위의 4건과 3건이라는 숫자가 다르게 다가왔다. 눈길이 계속 가는 이유는 또 있다.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만남은 금강산에서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다시 생이별” 또는 “또 한 번의 이별”이라는 기사 제목은 반복되었다. 반면 어떤 이산가족은 민간 차원에서 본인들이 알아서 간접적인 만남을 이어갔다. 편지가 왔어. 우리 어머니 사진, 우리 누나 사진, 〔…〕 환갑잔치를 한 것까지 다 왔더라고. 그래서 인제 그거를 왔다 갔다 한 거예요. 물건을 계속 보내고.(윤택림, 2016, 『구술로 쓰는 역사』, 아르케, 354쪽) 이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북으로부터 온 스무 통의 편지와 봉투에 담긴 사진을 보관하고 있고 북으로 물건을 보냈다. 민간 차원의 연결과 연락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통일부 통계에는 당국 차원의 만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간 차원의 항목 중에서 서신교환은 1990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빈칸이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쌓여왔다. 앞에서 말했듯이 서신교환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지속 가능한 남북의 만남은 미래가 아니고 역사와 현재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 관계 또는 남북 합의와는 별도로 이산가족의 당면 과제를 풀 방안은 있는 것이 아닐까? 민간인은 답을 알고 있다. 교류 경비를 지원하는 당국인 정부만 눈앞에 있는 그 길을 모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답 가운데 하나는 앞에서 살펴본 민간 차원의 생사 확인 방법 유형들에 있다. 이산가족의 만남에는 휴전선을 넘는 단 하나의 방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밖을 통해서 성사된 민간 차원의 서신교환 1만 1,641건과 상봉 1,757건 그리고 그들이 주고받은 사진과 물건에는 어떤 사연들이 담겨 있을까? 이산가족들 가운데는 남북 관계 또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만나고 연락하면서 지냈다. 이를 모으고 정리하면 이만한 평화 교육 교재가 있을까? 나의 연구 역량 부족과 게으름이 부끄럽다. 어떤 누군가의 몸무게 변화를 주요 뉴스에서 수시로 언급하는 한국 사회다. 이산가족의 서신교환의 빈칸 없음이 주는 세월의 무게감에 관심을 가지는 한국 사회를 그려본다.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미래는 민간 교류의 끊임없음과 무게감에서 나온다. 강주원 (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