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이 다시 올까요. 올 한 해 의미 있는 일을 꼽으라면 단연코 어르신들과 함께 한 글쓰기 수업이었습니다. 별난독서문화체험장 대표님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지만, 내 마음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지요. 두려운 마음이 든 건 어르신들이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선뜻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죠. 어르신들 마음의 빗장을 풀 방도를 고민하며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만남이 끝나기도 전에 내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았습니다.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고 설렘만 가득했지요.“연필 잡은 지가 언젠지도 몰라요.”“밭에서 일만 하는데 무슨 글을 써요.” 연필을 잡으며 어색한 듯 수줍게 웃던 어르신은 어느새 꿈 많은 소녀와 소년이 되었습니다. 맞춤법이 틀리면 틀리는 대로, 문장이 틀리면 틀리는 대로, 이야기마다 어르신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엄마 이야기, 나의 전성기 이야기, 첫사랑 이야기, 내 인생에 다가온 가을 이야기….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쓸 때는 어르신들도 나도 흥이 났습니다.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당신은 모르실거야….’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선곡했고, 어르신들 사연이 담긴 노래도 틀었습니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곁들여지니 글쓰기도 신이 났지요. 역시 노래의 힘이란 대단합니다. 노래에 담긴 풋풋했던 스무 살의 추억 한 자락이 따라 나왔고, 어머니와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으며, 죽음을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어르신의 회한이 담겼습니다. 그 사이 무더운 여름이 훅 지나갔습니다. 어르신들과의 만남은 푹푹 내리쬐는 한여름 같았던 내 인생에 쫙쫙 내리는 소나기였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인생을 조금 배운 내 삶은 훨씬 풍요로워졌지요. 직업이 글 쓰는 일이다 보니, 다양한 사람과 책,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축복이지요. 여기에 역사 동화를 주로 쓰다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의 인생까지 종종 엿듣고 있습니다. 죽은 영혼은 살아있는 우리를 부릅니다. 당신들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당신들의 상처 입은 영혼을 위로해달라고 청합니다. 개인적으로 좀 긴 시간을 아픈 역사에 천착하다 보니 얻은 게 많습니다. 아픔을 대면하면 할수록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애정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미 죽은 이들을 통해서도 인생을 배워 우리 존재의 의미를 깨달으니 말입니다.요즘 우리는 어수선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새 해가 열렸지만 여전히 어수선합니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기를 읽을 때마다 하느님 친히 흙의 먼지로 나를 빚으신 후, 내 코에 당신 입을 갖다 대어 숨을 불어넣어주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하느님은 엄마 마음으로 나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모든 이가 엄마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어수선한 이 땅에 하느님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시기를 청합니다. 세월호와 골목에 갇혀 으스러져간 청춘들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생명이 자본과 권력의 도구로 전락되지 않는 세상. 고된 하루지만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 깊은 겨울이 와도 오늘 할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세상. 우리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평화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소서. 아멘. * 그동안 많이 부족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저의 인생(글)이 누군가의 인생에 티끌만큼의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