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톨릭교회의 혁신의 길

미셸 샴봉(Michel Chambon), 티에리 메이나르(thierry meynard) / 발행일: 2020년 2월 29일 2022년 「평화의 길」 특별 기획으로 이웃 국가 중국의 ‘천주교회’의 역사와 오늘날의 모습, 그리고 바티칸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관련 칼럼을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글의 영역본은 예수회 교양지 「치빌타 카톨리카」(La Civiltà Cattolica)의 <교회 생활Church Life> 코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링크 : https://www.gjwm.org/2020/02/29/vie-per-laggiornamento-della-chiesa-cattolica-cinese/ 최근 수십 년 동안 중국은 거대한 사회, 경제, 정치적 변혁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지역 가톨릭교회 입장에서 보면, 도전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중국 가톨릭교회의 발전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에 마주하고 있으며, 교회 자체의 구조상의 변화와 새로운 방안을 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 교회 안팎으로 많은 논평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분석하고, 행동 규범을 제안하거나, 혹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문 지식과 좋은 동기를 가진 평론가들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지만 그들의 논의에 대해 우리는 다음의 3가지 관점을 근거로 하여 그들의 토론을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중국 가톨릭교회 문제에 관한 3가지 관점에 관하여 첫 번째 관점은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교회의 모든 문제점과 어려움이 모두 중국 정부라는 외부적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이다. 이런 논점은 주로 ‘공식’교회와 ‘지하’교회 사이의 구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줄곧 이를 해결되어야 할 가장 긴박한 문제로 여긴다. 그렇지만 이런 관점은 현대 민족국가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에서부터 출발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중국을 당연하게 반(反)그리스도적 실체라고 과도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역 다양화의 중요성, 국가기관 간의 내부 경쟁, 공산주의 정권의 실용성을 과소평가한다. 따라서 이런 관점은 교회와 국가가 서로 대항하여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는 사고방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부분의 에너지가 중국 공산 국가에 쏠려 있어 교회 그 자체에는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런 논의를 전개해 가기 위해 대만의 사례 연구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만의 정치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교회의 성장과 혁신은 그만큼 활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국가는 모든 문제의 해결 방안도 발생의 기원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관점은 비교적 낙관적인 관점으로 현대의 주도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관점은 대다수 상황에서 다양한 훈련과 학습 계획을 통해 중국 가톨릭교회의 현재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성직자, 평신도, 젊은이들에게 다시 진정한 현대식의 가톨릭 신앙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마치 ‘만병통치약’으로 보인다. 정성 들여 준비한 교리 전수, 흥미로운 청년 캠프, 성직자들의 풍부한 지식, 인터넷의 적극적인 온라인 교류는 마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중점적인 요소로 보인다. 하지만 객관적인 이성은 큰 장점이면서도 많은 도전이 따르기도 한다. 또한 이성이 현장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다고도 할 수 없다. 결국 이성적 훈련 방법만 과도하게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면 오히려 다양한 인간, 사회집단, 및 인간 계층을 무시할 수 있다. 사실 지식의 권위에 대한 진실하고 순진한 신뢰는 다음과 같은 관념을 전파한다. 즉 천주교는 일종의 뚜렷한 단일 유형에 대한 경향성을 보이는데, 서양에서 유래되었으며 지도자가 가장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표준양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성직자들은 점점 유일한 지식의 창고가 되어가도록 하지만, 치유, 영혼, 천국, 계시록에 관해 중국인들이 갖는 깊은 종교적 관심은 중시되지 못했다. 요컨대, 많은 사람들은 합리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서양의 기준과 지침에 깊이 뿌리를 두고 서양에서 왔으며 서양에 봉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관점은 중국 자체의 문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중국 가톨릭의 현재 방식은 진실되고 심오한 중국 문화와 매우 큰 격차가 존재하고 있기에 양자 간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본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 문화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객관적인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화적으로 긴밀히 융합되어야 여러 긴장 상황과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으며 복음 전파를 보다 쉽게 만들 것이다. 이런 관점은 ‘중국특색’을 견지하는데, ‘중국특색’의 함축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모호한 문화의식 위에 세워진다. 이런 의식 형태는 일종의 보편화 경향을 전파하는데, 중국의 역사와 특징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중국 문화는 종종 유교 혹은 불교 문화로 도식적으로 인식되고 민간 종교신앙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데, 과연 무엇이 중국의 독특성일까? 누가 과연 이에 답할 수 있을까? 이 밖에도 문화 융합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 뒤에 숨는 것은 하나의 지름길이 될 수 있는데, 즉 중국 가톨릭 공동체 속에서 피해 지내거나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의 심도 있는 탐구를 거절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위험성은, “문화”라는 것이 어떠한 도전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극단적이며 독재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민족지학(民族誌學)과 문화인류학, 교회론, 교회사와 보다 진지한 대화를 거쳐야만 하는데, 그래야만 이러한 ‘문화주의’적 논점에 존재하는 합리적인 우려에 효과적으로 답할 수 있겠다. 따라서 중국 가톨릭교회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위한 대부분의 논의에서 세 가지 주요 견해가 있다고 보는데,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국가, 지식 형태 혹은 중국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교회의 전문가나 엘리트들이 이러한 관점 중 두 가지 또는 세 가지를 결합하기도 한다. 일련의 반복적이면서 문제가 있는 관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것인데, 위의 것들이 장점과 동시에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대부분의 논의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관점에 입각하여 살펴보도록 만든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중국의 그리스도교를 되돌아보려면 그리스도교 전체와 함께 그리스도교가 오늘날 중국에서 어떻게 발전해나가고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주목하고 또한 예수의 중국 제자들을 자세히 관찰할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따라서 본문의 제1부에서는 현재의 중국 개신교에 대해 간단히 소개할 것이다. 이는 결코 개신교를 하나의 모델로 삼거나 한 단계 더 나아간 “기적적인 해결방안”으로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중국에서의 다양화된 현실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함이며 이를 토대로 한 단계 더 나아간 연구를 진행하기 위함이다. 중국 개신교 신자에 대해 자세히 관찰한 후 중국 가톨릭교회의 현실을 다시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다. 중국 개신교 무엇이 오늘날 중국 개신교인가? 모두 중국 개신교가 극단화, 다양화되었으며 여전히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개신교 학자와 지도자들은 여전히 이토록 다분화된 유형을 어떻게 대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를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개신교는 어떤 운동(運動)이나 변화를 통해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우리의 견해로는 오늘날 위대한 중국 개신교의 하류(河流)로 유입되는 네 개의 주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개신교 교회에서 흔히 불리는 “삼자애국운동(三自愛國運動)”이다. ‘삼자’란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을 가리키며, 이 교회 명칭은 정부가 제의한 공식 목표(目標)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중국 공식 교회로 등록되어 있으며 중국 정부가 지정한 대부분의 지시사항을 준수하고, 공인되고 훈련된 성직자의 지도하에 운영되며, 통상적으로 특정 재산이나 건축물을 소유하고 있다. 그중 일부 커뮤니티는 1만 명 이상의 신자가 모이기도 하며 십여 명의 목사와 100명에 달하는 전임 지도자가 있다. 신학과 교회 전통에 의해 구분되는 다른 교파(재림교회, 오순절교회, “작은 양떼” 등)들도 삼자애국운동 내에서는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반(半)종파 형식은 지역마다 다르다. 서양의 종파 모델을 통해 중국의 개신교 교회를 이해하려 하면 자칫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중국 개신교의 두 번째 경향은 “가정교회(家庭敎會)”라 불리는 운동(運動)이다. 이는 일체의 법률적 구속과 인가를 거절한 여러 단체나 커뮤니티를 포괄한다. 비록 많은 “가정교회”가 경찰과 같은 지방 정부 기관과 확고한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일반적으로 국가에는 반항적인 태도를 유지하지만, 공산당과 조직적으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일반적으로 500명을 넘지 않도록 나누어 많은 이목이 쏠리지 않도록 한다. 그들은 국내외에서 성경 공부나 신학 기초지식을 습득해 지도자가 되어 이끌고 있는데, 대부분 개인 가정집에서 집회를 열고 중요한 행사가 있을 시에는 호텔 등의 넓은 홀을 임대하여 행사를 진행한다. 그중 일부 교회는 지역, 국가 및 국제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서로를 독려하고 종교적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수많은 사회학자들이 “자유”, “저항”, “지하생활”에 연연해하며 기타 경향에 대한 중요성을 소홀히 하면서 그들에 대한 분석에 낭만적 색채를 부여하게 되는데, “가정교회”를 둘러싼 중국 개신교 연구와 토론이 대부분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관찰자들은, “가정교회”의 활력은 중국 국가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단순화할 수 없으며 오히려 중국 사회 종교 모델의 다방면과 결합하여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세 번째 경향은 사회학자와 종교 지도자들을 주목시킨 ‘온주교회(溫州教會)’와 상관된 것이다. 온주는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동부에 위치한 대형 항구도시로 그리스도교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고, 뿌리를 내려 오늘날 중국 국내외에서 널리 퍼져 있는 독특한 교회 모델을 형성했다. 1990년대 이래로 지역 전체 건축물에서 붉은 대형 십자가가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 이는 일반적으로 “온주교회”의 존재를 드러내 주는데, 이 교회는 현지 기업가들로부터 시작된 단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회는 195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소위 “번영신학”운동과 연계되어 있으며, 개인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지의 종교, 경제와 정치 역사로 인해 이 교회는 목사가 아닌 사람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독특한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협력위원회에서 지도권을 나눠 가지는데 협력위원들은 모두 평등한 관계로, 2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교회 구성원들의 선거로 선출되며, 담당 지역의 물질적, 정신적 삶의 여러 측면을 책임진다. "온주교회"는 그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문가(예: 주일 예배를 위한 설교자, 성경 연구를 위한 성경학자)를 초빙하는 협회처럼 운영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개신교는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중국 및 다른 지역에도 널리 보편화되어있다. 오늘날 이는 상해, 광주(廣州) 등의 도시와 안휘(安徽), 강서(江西) 등의 성(省),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국가에서도 튼튼한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최근 저장성 정부에서는 이런 형식의 개신교를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경제성 구조를 지닌 단체에 점차 회의적이 되어 온주의 전형적인 십자가 교회를 해체하라고 명령했다. 어떤 경우에는 공식적인 건축허가증이 없어 건물 전체가 철거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개신교 경계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향력 있는 운동은 "이단 그룹"이라고 불릴 수 있다. 다양한 중국인들이 기독교 계시를 유용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형식의 그리스도교 운동을 창출했는데, 그것들은 발전하면서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불교를 넘어서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하남(河南)성에서 온 한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성화신’이라고 불리는 중국 여성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동방삼전운동(東方閃電運動)’이라 불리며 후에 ‘전능신교(全能神教)’라고 바뀐 운동으로 중국에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들은 주요 교회 입구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곧 다가올 세계 종말을 준비할 것을 요청하였다. 1990년대, 이 운동은 중국 중앙 정부가 그것을 사이비 종교로 분류할 정도로 커지고 의심스러워졌다. 전능신교의 창시자는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보호를 요청했다. 이렇게 잘 알려진 사례 외에도, 많은 지역적 교의와 숭배는 기독교도들의 입교를 요구하고 기타 개신교회와 천주교를 반대하도록 했다. 비록 이러한 운동의 대부분은 외국 관찰자들에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의 영향은 매우 강력했으며 중국 기독교 역사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19세기 중엽의 태평천국(太平天國)운동은 약 2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발생시켰다. 태평천국운동은 홍수전(洪秀全)이 주도한 천년왕국 기독교 교파이다. 오늘날 중국의 종교적 토양에서 다양한 혼합 기독교 종교 단체가 계속 생산되고 있으며 중국 개신교가 자신의 방식을 정의하려고 시도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이단적이고 불안하고 역동적인 이러한 운동은 가장 통일되고 가장 전통적인 교회가 신학과 성경의 기초를 깊게 하고 점차 성경 근본주의에서 벗어나 그들의 제도적 특성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도록 촉진시켰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그들은 국가기구, "가정교회", "온주교회" 및 "삼자 운동" 등이 연합하여 그에 저항하도록 간접적으로 촉진했다. 우리는 이 집단들을 개신교도로 단순히 간주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의 영향력을 연구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며, 현재 중국 개신교의 주요 발전 중 일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이 엄격히 말하자면 종교가 아니라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네 가지 추세 사이에는 상호 영향과 지속적인 교류가 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유형의 교회에 가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통상적으로 "삼자 운동" 또는 "가정교회"에 예속되지는 않지만 대외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지방 정부 기관에 의해 묵인된 교회에서의 왕래가 있다. 마찬가지로, “참예수교회”는 중국 남부지역의 오순절회와 교류가 특히 활발했으며, 삼자 운동에 예속되지만 삼위일체 신앙은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개신교는 이전의 그 어떤 갈래보다도 다양하고 활발하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급변하는 개신교의 현실은 우리가 중국 가톨릭을 다시 되짚어보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중국 개신교로부터 어떤 계시를 얻을 수 있는가? 개신교 단체는, 그리스도의 존재는 가톨릭교회의 분명한 한계를 초월하며,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길 원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아마 기타 그리스도교 전통의 영향 아래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실현시켜 갔겠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현현을 기다렸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비록 개신교 단체의 문제점이나 의구심을 최소화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존재와 노력까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그 어떤 단체나 협회 혹은 정당을 초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신비와의 연결 관계를 그들과 관련하여 심화시킬 수 있게 된다. 확실히, 많은 중국 개신교 신자의 가톨릭교회에 대한 인식은 충분치 않다. 우리는 여전히 교회가 일치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존재를 더욱 명확히 알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분명한 목표이자 우리의 모든 행동과 전략을 초월하는 전제이다. 이 전제가 없다면, 그 어떠한 교육개혁 계획, 문화 융합을 위한 노력 교회의 사회적 활동은 모두 진정으로 발전할 수 없다. 두 번째로, 개신교 단체는 또한 중국에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조직되는 방식이 중국 공산당의 영향만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국가가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결정할 수 있는 중국의 유일한 전능한 신은 아니다. 개신교 신자를 예로 들어 보면, 중국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조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타 요인으로는, 동일하지 않는 신학의 선택, 경제적 조건 및 지역적 특성 등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가톨릭 신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부 사람들이 여전히 “지하” 천주교 신자인 것은 정치적 원인이 아니며, 더 중요한 것은 민족적이고 외국 혐오적 긴장 때문이라고 여러 번 지적했다. 모든 문제를 정치적 이유로 돌리는 것은 단순화된 논리일 뿐이다. 경제 이민, 신학 논쟁, 역사적 유산 문제와 지역적 특수주의 등은 중국 천주교의 내부 분화 요소들에 대한 진일보한 해석인 것이다. 따라서 중국 가톨릭교회를 애국교회와 지하교회 둘로 나누는 것은, 중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중국 공산당을 지나치게 탓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지막 세 번째를 언급하는 바이다. 개신교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중국 가톨릭 신자, 중국 가톨릭 영성수련과 신학, 가톨릭 단체 및 기관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가톨릭의 다양성은 위에서 언급한 개신교의 4가지 흐름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중국 가톨릭교회의 실질적인 상황이 조정과 일치를 이루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역적 전통, 비즈니스 네트워크, 신학의 다원화, 종교적 대립, 국제 경쟁의 영향, 민족 다양성 등, 이는 모두 21세기 중국 가톨릭의 다양화와 특이한 활약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은 종종 설명되기가 어렵다. 다양성을 다루는 것은 엄청난 도전일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것을 정치, 신학 혹은 경제 중의 어느 한 측면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방식은 중국 가톨릭의 정신적 부유함과 종교적 노력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신비체는 결코 1차원적이지 않다. 우리는 중국 가톨릭에 대한 논의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가지는 육과 영의 역동성이 종종 무시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중국의 수도원 생활, 남성 종교 지향, 현재의 오순절 교육의 영향, 청년사목과 도시화 간의 상호작용, 평신도 자선가의 공헌, 그리고 홍콩교구와 기타 성당의 영향에 대해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런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겠는가? 중국 가톨릭을 식별하고 논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유형관찰론과 서술 방식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결론 중국 가톨릭교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성(일치)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다양성을 충분히 다루지 않으면 교회의 일치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여전히 단순하고 피상적인 측면에 머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와 전략적 담론을 떠나, 이런 다양성이 가톨릭의 동일성과 일치의 구성에 위협이 되는지 여부를 새롭게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회의 역사 자체가 이런 종류의 위협이 없었음을 증명해준다. 장기적으로는 교회가 대안적인 형태로 생존할 수 있게 하고, 비주류 운동들이 그들의 은총을 나눌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전체 교회로 말하자면 일종의 유익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의 혁신을 추동했음을 알고 있다. 중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대부분의 결정들이 이미 실시되었다. 하지만 비록 중국 교회는 공의회에서 결정된 전례 개혁이나 구조 개편을 실행할 수 있지만, 중국 그리스도교와 국가 자체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이처럼 크기 때문에 혁신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토록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향하여 “우리의 창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중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배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스도 신비체는 중국에서 새로운 특징을 제시하며, 더 명백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새로운 맥락에서, 오늘날의 중국 가톨릭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한 성찰을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들이 독특하고 근본적인 존재와 접촉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그분께서 신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교회의 범위를 초월하는 곳에서 하신 여러 약속들을 더욱 공개적으로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인식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방식은 그간의 중국 가톨릭의 정신적 부유함과 종교적 노력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신비체는 결코 1차원적이지않다. 우리는 중국 가톨릭에 대한 논의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가지는 육과 영의 역동성이 종종 무시된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필자 소개 - 미셸 샴봉(Michel Chambon) 싱가포르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티에리 메이나르(thierry meynard) 광조우 중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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