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모이세 신부 (마두동성당 주임) 11월 4일 아침, 차를 몰고 일산성당에 들러 동창 신부를 태우고 북한군 묘지가 있는 파주 적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본당 총회장님의 전화였습니다. 어젯밤, 사목위원 한 분의 모친이 선종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는 빈소가 저 멀리 경북 문경이라 성당에 알리지 않으려 했던 것을 친구 교우분이 알고 사목회에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이 날은 평화를 기원하는 위령미사가 오후에 북한군 묘지에서 있고, 또 아침에는 민족화해 관심 사제들이 인근 설마리 영국군 묘지에서부터 북한군 묘지까지 10km가 조금 못 되는 길을 도보순례하며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민족화해 사제들과 설마리 영국군 묘지를 참배한 후 순례단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문경으로 가기 위해 차를 돌려 급히 본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북한군 묘지를 다시 찾은 것은 11월 25일 오후였습니다. 그날 아침 9시에 본당 노인대학(데레사 대학) 봉사자들과 담당 수녀님과 함께 9명이 파주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코로나 기간 중에도 봉사자들을 충원해 노인대학을 열어 어르신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지요. 처음으로 찾은 곳은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에 있는 ‘연천 호로고루’였습니다. 함경북도에서 발원해 연천과 파주를 거쳐 한강을 만나 김포와 강화로 흘러드는 임진강은 남북을 관통하는 무척이나 긴 강입니다. 이 강은 지역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곧 적성에서는 ‘칠중하’로, 장남면에서는 ‘호로하’로 불렸다고 합니다. ‘호로고루’는 호로하 변에 높이 쌓은 망루라는 뜻이겠습니다. 옛 고구려가 백제와 마주하며 쌓은 토성이지요. 이곳은 수심이 매우 낮아 부근 임진강 줄기 가운데 유일하게 도보로 건널 수 있는 곳인 데다가, 대부분이 높은 주상절리 직벽으로 이루어져 공격과 수비 모두에 중요한 지점이라 이후의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쇠기러기가 분주히 비행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토성 위 풀밭과 그 아래 흐르는 임진강은 평온하기만 하였습니다. 이어서 한국전쟁 전만 해도 한강과 임진강을 오가는 배들을 통한 물류 운송의 중심지였던 ‘고랑포’와 그 가까이 있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릉’을 찾았습니다. 고랑포는 전성기 때에는 화신백화점의 분점이 설치되고 3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거주하던 큰 포구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민간인이 거주하지 못하는 지역으로서 옛 영화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요. “내 고향은 장남 고랑포외다”로 시작되는 춘허 성원경의 시비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입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길 건너편에 역사박물관 하나가 새로 들어서 있었습니다. 경순왕릉을 찾았더니 연배 지긋하신 문화해설사 한 분이 반갑게 맞이하며 이야기보따리를 구수하게 풀어놓으셨습니다. 신라 임금의 왕릉이 경주가 아닌 이곳에 자리하게 된 유래와 왕릉의 자리가 그야말로 명당으로서 황금색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금계포란형)이라나…. 두지리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입니다. 청동 빛의 커다란 영국군 베레모를 가운데 두고 뒷벽에는 1951년 4월 이곳에서 중공군 3개 사단과 싸우다가 돌아오지 못한 영국군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고, 당시 부대원들의 모습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우리나라를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넋들을 홀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추모공원이 새로 산뜻하게 단장돼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요. 북한군 묘지 이어서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 55에 위치한 ‘북한군 묘지’를 찾았습니다. 전에는 ‘북한군 · 중국군 묘지’라 하였는데 중국군의 유해는 몇 년 전 두 차례에 걸쳐 본국으로 모두 송환되었다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발견된 북한군의 유해를 휴전선 가까운 이곳에 모셔둔 것이지요. 살아서는 서로 방아쇠를 당기던 적이었지만 “썩어문드러진 살과 뼈를 추려” 무덤을 만들고 떼를 입혔으니 “죽음은 이렇듯 마음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하는 구상 선생의 ‘초토의 시 8’을 함께 음미한 후 희생자들의 안식을 빌며 고개 숙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봉사자 한 분이 카톡방에 올려준 나들이 후기를 소개합니다. “행복한 나들이였지만 이렇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곳이 핏빛 가득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에 마음이 아픕니다. 불쌍한 영혼들, 특별히 머나먼 타국, 우리나라에서 전사한 영혼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원한 안식을 기도드립니다.” 수고하는 봉사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했던 나들이였는데 대성공이었습니다. 평화 가족 여러분에게도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