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희 안젤라 (연세대 정치학 박사수료) 권위주의 체제 정치체제를 분류할 때 민주주의가 아닌 제도를 권위주의라는 틀로 개념화한다. 권위주의의 특징은 소수의 그룹이 권력을 행사하며 주민이 정치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민주적인 과정으로 선출되지 않았기에 이들이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에 폭력과 통제가 수반된다. 쿠데타로 권력을 독점한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해 개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일당독재 정권이 자당이 추구하는 사상과 정책 외 다른 가치가 행사되지 못하게 막는 행위, 주요 관직을 지도자 개인이 임의로 임명하거나 법과 제도가 지배연합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데 동원되는 것이 권위주의 체제의 특징이다. 지도자와 엘리트가 사적 이익만을 추구할 경우 해당 체제에서 부정부패와 비리, 부조리는 당연한 사회 현상으로 여겨진다. 소수 권력층을 위해 자본과 재화가 자의적으로 활용되어 대다수 주민은 빈곤에 허덕이는 상황이 연출된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제3세계 독재 국가에서 권력층은 호화롭게 생활하는 반면 주민의 삶이 처참한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권력이 소수에게만 독점되며 이 권력에 대해 주민의 참여가 불가능하기에 이들은 주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국가가 주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실패국가(failed state)가 대체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많이 나타나는 이유다. 실패국가지수를 나타내는 지도. 적색으로 갈수록 실패국가지수가 높은 나라이며,국가의 통치능력이 부족해서 국민들이 적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평화기금회Fund For Peace 자비로운 독재자 반면, 권위주의 체제여도 권력층이 주민에 대해 시혜적인 정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성장과 발전이 담보되기도 한다. 이때 권력층은 주요 엘리트를 능력에 기반에 두어 선발한다. 소수에게 배타적이고 선별적으로 지원해 특권층이 될 수 있도록 육성하는 것이다. 현 능주의(meritocracy)라 하는 이 제도는 중국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에서 채택되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선 거권위주의라고 비판받는 싱가포르의 정치체제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나 실질적으로는 특정 정당과 소수의 권력층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한다. 태형과 같은 인권침해적인 강한 국법으로 주민을 통제하지만, 소수 엘리트가 입안한 정책은 싱가포르와 같은 작은 도시 국가를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한 주요 요인이다. 중국이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제시하며 개혁개방을 추진했을 때, 빈곤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이 체제가 번영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에 대 해 세계는 주목하였다. 현능주의에 입각해 시장이 아닌 국가가 발전을 주도한 중국은 현재 미국과 자웅을 다투 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 사례는 자유가 제한된 권위주의 체제의 국가 주도 발전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고, 개혁개방과 시장화를 이뤄도 기존의 권력층이 배타적인 특권을 잃지 않고 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굳이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고 양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에게도 닫혀있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과 같은 번영과 발전을 채택할 것을 꾸준히 권고하고 있다. 북한의 자비로운(?) 독재는 가능할 것인가? 현재 우리가 비판하는 북한의 모습은 권위주의 체제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예컨대 북한에서 금연법이 채택되었지만, 법이 무색하게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공식 석상에서 담배를 손에 끼우고 있는 사진이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다. 장마당을 관리하는 관료 및 주민을 감시하는 정보기관 관계자와 시장 상인 이 뇌물로 유착된 관계가 만연하다는 것이 북한이탈주민 다수의 증언이다. 지도자를 보좌하는 엘리트가 주요 가문을 중심으로 세습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출신 성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고 법치(法治)보다는 인치(人治)가 이루어지며,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일상 곳곳에 퍼져있는 상태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공식석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중국 사례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대안 모델로 성공적인 성과를 보여주면서, 북한은 현재와 같은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겠다는 사고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전체적인 삶의 질은 과거보다 좋아지지만, 소수의 권력층이 배타적 특권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주도 발전과 현능주의 체제로의 전환 말이다. 이런 관측이 가능한 까닭은 북한을 지리적으로 둘러싼 주변국 모두 번영과 풍요를 이루었고, 북한 주민 역시 이 사실을 이제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북한의 지도자가 경제성장의 실패를 자인하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데에 부채감을 표현하는 배경일 것이다. 삼천메기공장을 시찰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21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내부 봉기를 진압할 수 있는 군부에 대한 포섭만 확실하다면 권위주의 체제는 주민에 대한 책임 없이 정권 유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외부에서 기층 주민을 동요시키고, 이에 영향을 받아 분열된 엘리트가 지도자와 기존 권력층에게 저항할 수 있는 자원과 재화를 융통한다면 기존 지배연합은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자비로워질 수도 있다. 성장과 번영은 제한적인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생존과 경제적 욕구가 해소된 중산층의 등장은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권리를 정권에 요구하며, 기존 세력은 차별적인 특권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정치적 양보와 타협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혁명적인 민주적 전환은 아니지만, 점진적인 정치 체제의 개선과 이에 혜택받는 주민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지도자와 특권층이 주민에 대한 선의와 책임이 자발적으로 형성되기만을 고대하기보다,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자비로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조건을 외부에서 조성하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외부에서 북한에 진입할 기회가 많아지고, 이 관여가 기층 주민을 대상으로 제도화될수록 이 여건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북한의 권위주의적 체제가 반드시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한 징벌과 제재도 불사해야 한다는 극단적 당위론보다 실제 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리적이고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현실적으로 제3의 선택지를 찾기 요원하고, 자비로운 독재자와 포악한 독재자라는 한정적인 선택지 중 우리가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보다는 전자가 단연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