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1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북핵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이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 핵무장 필요성을 공식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과연 한국은 북핵 위협에 맞서 독자적 핵무장을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한국의 핵무장은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 핵무기를 절대무기라 한다. 다른 재래식 무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단행된 북한의 6차 핵실험 폭발력은 TNT 약 10만 톤 규모로서 히로시마 핵폭탄의 7배 수준에 이른다. 이는 핵폭탄 하나로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인데, 인구가 밀집된 서울에 떨어진다면 약 200만 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파괴력이다. 미 · 러 등 핵 강국들이 보유한 핵폭탄의 위력은 더 가공스럽다. 러시아가 작년 4월에 시험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마트는 15개의 탄두를 실어 나르는데, 탄두 하나의 파괴력이 100만 톤에 이른다. 사르마트 1기로 프랑스 전체나 미국 텍사스 정도의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파괴력 때문에 국제사회는 미 · 러 · 중 · 영 · 프 등 기존 핵보유국을 중심으로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의 핵 보유를 막고, 핵 보유국내에서는 핵무기 증가 · 기술발전 · 핵실험 등을 방지하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핵확산방지조약(NPT)이 체결됐다. NPT는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는 놓아둔 채 비핵 국가의 핵무장만을 막으려는 데 역점을 둬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가입국 숫자가 190국에 이를 만큼 권위와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 취약점을 갖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이스라엘 · 인도 · 파키스탄 등 친미 국가들의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는 등 공정성과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들은 NPT에 가입하지 않은 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1968년 7월 1일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NPT 체결 당시 모습 Ⓒ Jim Gray/Keystone/Getty Images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이 유독 국제 문제화되고 유엔 차원의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반미(反美) 국가이기 때문이다. 지구촌에 절대 패권을 행사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반미 국가가 핵무기로 자국을 위협하고, 핵이 테러리스트에게 확산되는 상황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 어떤 수단을 쓰든 반드시 막아야 할 중대한 안보 위협이다. 북한 · 이란 등 핵개발 의혹이 있는 국가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단합해 혹독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중국 · 러시아 등도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미국을 견제하지만 핵확산 문제만큼은 철통같은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핵무기가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무기이기에 핵확산 저지라는 목표에서는 이해가 같기 때문이다. 현실가능성도 없고 국익에도 도움되지 않는 독자 핵무장론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보리가 북한 핵무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핵을 용인할 경우 동북아시아에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국제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다면 일본이 자국의 심각한 안보위기를 좌시할 리 없으며 한국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본과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짧은 기간 내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시작으로 점차 동북아 6개국 모두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동북아 질서는 크게 바뀌게 된다. 동북아에서 미국 패권은 무너지고 6개국 모두가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지키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세상이 된다. 핵국가인 일본과 한국도 더 이상 미국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판단대로 각개 전투할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끔찍한 시나리오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 Ⓒ 연합뉴스 미국 행정부가 윤 대통령의 핵무장 필요성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 직후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이는 변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도 “미국의 정책은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논평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뿐만 아니라 한국의 핵무기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거듭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이를 무릅쓰고 독자 핵무장으로 가겠다면 한미동맹 파탄과 유엔 차원의 혹독한 경제 제재 등 각종 제재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인 대한민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닌 것이다. 또한 독자 핵무장은 우리의 최대 국익인 평화 · 통일 · 번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북아 6개국 모두가 핵무장 국가가 될 경우 한민족의 염원인 한반도 통일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질서를 통째로 바꿀 핵보유국 통일 한국의 등장을 주변국들이 결코 찬성할 리 없다. 주변국들이 자국의 핵심이익 보호라는 명분으로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은 추진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독자 핵개발 등 군비경쟁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핵 위협을 제거하는 길은 북한과 대화 · 협상을 통한 비핵화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비핵화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역지사지해야 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 체결 · 북미관계 정상화 등 합리적 주장을 수용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