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원대학교 수료) 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말이 있다. 북한에서는 “애인에게 신발 사주면 도망간다”는 속설이 있어 연애 중 연인에게 신발 사주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신발을 사주지 않아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신발을 사줘도 곁에 남을 사람은 남는 법이다. 비아시아권 외국인들은 동양인들, 특히 한 · 중 · 일의 생김새만 보고 출신 국가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가 유럽인들을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옷 입은 스타일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단다. 한 · 중 · 일 패션스타일의 특징을 누군가 이렇게 정리했다. 한국은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매우 깔끔하며 잘 갖춰 입은 느낌이 대체로 비슷하다. 중국은 컬러가 화려하고 인구만큼이나 디자인도 다양하고 다채롭다. 일본은 비정형화된 느낌의 편하고 귀여운 스타일이다. 패션은 한 사회의 문화를 담고 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신발이야말로 패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교복과 회사 유니폼처럼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는 곳에도 신발만큼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교복 Ⓒ 연합뉴스 전체주의와 집단주의가 강한 북한에서는 교복뿐만 아니라 신발도 공급한다. 그래서 의무교육 기간(소학교와 초 · 고급중학교 전체 11년)과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라는 조직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은 교복과 신발을 신고 다닌다. 더욱이 학교별로 디자인이 상이한 한국과 달리 북한은 지역과 학교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하나의 디자인과 동일 색깔의 교복을 입는다. 다행스럽게도(?) 신발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무색하리만치 디자인의 종류는 겨우 두세 가지 수준이다. 중학교 시절 받았던 교복용 신발은 분홍색과 파란색 두 가지 컬러로, 신발 코숭이에 리본이 달린 것과, 없는 디자인이 전부였다. 그래도 새 신발을 신을 때는 신이 났다. 어렸을 때는 남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는 것마저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었던 1990년대 중후반에는 교복공급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최소 학교 졸업 전 한 번 정도는 교복을 받을 수 있었다. 교복과 달리 신발은 금방 닳거나 망가지기 일쑤다. 특히 북한의 도로는 한국에도 잘 알려졌듯이 상태가 매우 안 좋다. 대중교통도 열악한 상황이라 신발이 참 빨리 닳는다. 그래서 공급해주는 신발은 금방 망가져 버리므로 교복과 달리 신발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신발은 본인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북한에서 신발은 경제적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국영공장들이 잘 돌아가던 시기 대부분은 국영상점을 통해 북한에서 생산한 신발을 사 신었다. 전체적으로 디자인의 종류는 단순했지만 비슷한 경제생활을 영위하던 때에는 그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경제위기 이후 경제력의 차이는 사람들의 소비 흐름을 바꿔놓았다. 소위 ‘있는 집’ 사람들은 남다른 패션을 통해 과시욕을 드러냈다. 더욱이 신발은 매우 은밀하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다. 사회적으로 단정하고 깔끔한 ‘사회주의적 옷차림’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신발은 사회적 시선의 주목을 덜 받고 사상성도 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 어떤 도로를 이용하는지, 어떤 종류의 노동을 하는지에 따라 신발의 선택이 달라진다. 농사를 짓거나, 건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예쁜 구두를 신을 리가 없고, 또 사무직이라도 ‘업무용 차’를 이용할 수 있는 직급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신발은 다를 게 뻔하니까. 시장과 시장 메커니즘의 확산과 더불어 북한의 신발 수요도 증가했다. 이에 발맞춰 시장에는 다양한 디자인과 컬러의 신발들이 넘쳤다. 2000년대 초중반 북한을 휩쓸었던 ‘한류’도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한층 더 부추겼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종종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대사가 노출됐다. 이제 막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북한 주민들의 눈에 비추어진 풍요로운 한국과 이 대사는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었다. 드라마를 통해 ‘학습’된 ‘신남성’들은 사랑의 방식을 바꾸었다. 연인에게 신발만은 무조건 안 사준다던 인식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쁘고 좋은 신발을 사주는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좋은 신발은 좋은 것으로 데려다준다며? 그게 어디든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 물론 그게 나면 더 좋고” 가을철 전국신발전시회 Ⓒ 사진=노동신문/뉴스1 최근 들어 북한은 새로운 신발 브랜드 개발과 함께 정기적인 ‘전국 신발전시회’를 통해 북한 전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춘 신발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시회는 전시회일 뿐이고, 여전히 공급량이 부족한 북한에서 소비되는 신발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다만, 중국산에 대한 품질 신뢰도는 낮은 편이다. 기능성이나 품질면에서 훨씬 뛰어난 한국산 신발이라면 북한 사람들도 참 좋아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도 좋은 신발을 신으면 좋은 길을 걷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