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석 시메온 신부(인창동 성당 주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촌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 거의 지쳐갈 무렵, 갑작스레 실제로 포탄이 오고 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하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상황에 무슨 전쟁이야?’ 하면서, 머잖아 각국의 명분을 챙기며 휴전할 줄 알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확전의 기미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종전과 평화를 갈망해 온 우리로서도 먼 나라 일이라고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됐습니다. ⓒ 연합뉴스 다른 나라, 다른 대륙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체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돌고 돌아 우리 호주머니를 자극하는 날이 오면 이제 얘기는 달라집니다. 모든 것을 이 전쟁의 여파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한때 주유소 들어가는 게 망설여질 때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난방비 폭탄에 대중교통 요금까지 줄줄이 인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는 갑자기 늘어난 무기 수출로 역대 최고의 입맛을 보고 있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결과적으로는 경제적인 이득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만족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제2의 전쟁 가해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우리 호주머니에 대한 위협 못지않게 북쪽에서 침투했다는 무인기 소동 당시에는 자칫 일촉즉발의 순간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지도자가 젊은 장병들의 수많은 피를 필요로 하는 전쟁을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나 상식적인 측면에서나 누구보다 말을 아끼고 또 표정 관리까지 해야 마땅한 일부 미성숙한 정치인들로 인해 일반 대중이 겪어야 할 상처와 아픔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크게 와닿는 요즘입니다. 말하는 건 말 그대로 자유이지만, 더욱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자부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말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듯합니다. 구사하는 언어의 표현에 당연히 신중을 기해야 마땅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각자의 자리와 직분에 걸맞은 태도가 요청됩니다. 책임 없는 사람이 내뱉는 푸념 섞인 정제되지 않은 말은 일종의 배출에 불과합니다. 재활용의 가치는 전혀 없는 폐기물과도 같은 ‘아니면 말고’ 식의 언어들은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공동체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요즘 신세대 사이에 통용되고 있는 ‘할말하않’이라는 신조어 그대로, 때로는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때가 있고 또 그래야 하는 자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친구 간에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또 가족 간에 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사업상 때로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부모로서, 사업체 대표로서 그리고 본당 사도직 단체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말, 할 수 있는 말, 피해야 할 표현들이 우리 각자에게 요청되는 이유입니다. ⓒ 픽사베이 어린이들이 친구들이랑 떠들면서 표현하는 말들을 접할 때 종종 놀라곤 합니다.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고급진 표현을 술술 쏟아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때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와 연관된 말들을 아주 또렷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집에서 부모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이겠지요. 부모가 평소 관심두고 있는 분야가 어떤 것인지, TV나 인터넷을 통해 어떤 프로그램을 주로 접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자녀에게 스며들고 있는 방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언어에는 어떤 향기가 묻어 나오고 있습니까? 당연히 ‘복음의 향기’가 배어 있어야 합니다. 체취와 마찬가지로 향기, 특히 복음의 향기는 하루아침에 우리 몸에 배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자주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그 분 뜻을 이루는 그 분의 거룩한 도구로 살아갈 결심으로 무장된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입니다. 그 향기의 이름은 곧 ‘평화’이고, 그 ‘평화’라는 향기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진리와 의로움의 언어에 친해져야 할 것입니다. 갈등과 분열을 불러올 수 있는 말을 삼갈 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그런 말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이들을 식별하고 분명한 선긋기를 합시다. 화해와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여정을 서로 격려하면서, 우리 함께 평화를 이야기합시다. 공동선을 이야기합시다. 우리 말이 씨가 되어 참평화를 맛보는 그 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