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다(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베란다에 놓아둔 양파에 싹이 났다. 꽃병에 물을 받아 키웠더니 물만 먹고도 쑥쑥 잘도 자란다. 벌써 두 번이나 푸른 잎을 잘라 볶음밥을 해 먹었다. 잎 이 자라는 만큼 새하얀 뿌리도 싱싱하게 쑥쑥 자란다. 덩달아 물만 줘도 자라는 무도 연보랏빛 무꽃을 피워냈다. 한겨울에 보는 초록이라 몸과 마음이 즐겁다. 지그시 양파를 보노라니, 오래전(정말 까마득한 옛날)에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 두께에 짓눌려 감히 손을 대지 못하다 과제 제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느라 내용을 곱씹기보다는 부랴부랴 글자 읽기에 바빴다. 이제는 등장인물조차 가물가물 해졌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루센카(책을 펼쳐 이름을 찾았다.)가 자신이 어렸을 때 부엌에서 일하는 할머니에게 들었다며 들려준 ‘양파 한 뿌리(내가 읽은 책에는 ‘한 뿌리의 파’로 나온다.)’의 이야기다. 우선, 그루센카는 아버지 표도르와 첫째 아들 드미트리가 동시에 좋아한 여인이다.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찬 여인이기도 하다.(이것이 그루센카라고 규정 지을 수 없지만.) 양파 한 두름이 걸려 있는 오두막에 노파가 앉아 있다.Old woman seated in a cottage with a string of onions on the wall ⒸRembrandt(1606-1669), 1631 옛날에 아주 고약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고 말았다. 노파는 살아있을 때 좋은 일을 한 번도 한 적 없었기에 불바다 속에 던져졌다. 이를 가엾게 여긴 노파의 수호천사가 하느님께 청을 올렸다.“하느님, 저 노파는 밭에서 뽑은 양파 한 뿌리를 거지에게 주었습니다.”“그럼, 양파 한 뿌리를 노파에게 주고 그걸 잡고 불바다에서 나오도록 해라. 만약 노파가 불바다 밖으로 나온다면 천국으로 보내주고, 양파가 끊어지면 다시 불바다에 남게 된다.”수호천사는 양파 한 뿌리를 노파에게 건네며 잡고 올라오도록 했다. 노파가 거의 다 올라왔을 때쯤, 이를 지켜보던 불바다 속 사람들이 노파에게 달려들어 매달렸다. “나를 끌어올려 주는 거지, 너희들은 아니야. 이건 내 파야, 너희들 파가 아니란 말이야.”노파는 이들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노파의 말이 끝나자마자 파는 뚝 끊어지고 말았다. 결국 노파는 불바다 속으로 빠져버렸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천사는 슬피 울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내 마음이 ‘좋은 일을 하지 않았다.’에 머물렀다. 노파가 나쁜 짓을 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좋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말만 나온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 속 ‘부자와 라자로’의 부자는 거지 라자로를 자기 집 문 앞에 누워 있도록 했다. 부자가 나쁜 일을 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는 노파처럼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부자와 나자로(Dives and Lazarus) Ⓒ Luca Giordano(1634-1705)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루카 16, 21) 좋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건 나 이외의 타인에게 무관심했고 무자비했다는 것이다. 곧 타인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던 아이히만처럼, 단절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게 만든다. 연대는 더더욱 없다. “이건 내 파야, 너희들 파가 아니란 말이야.” 노파는 하느님이 보내 준 양파가 자신의 것이라 호통을 친다. 가느다란 양파에 다른 사람들이 매달리면 다시 불바다 로 떨어진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렸다. 두려움은 곧 증오와 분노에 놓이게 한다. 노파는 그 즉시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는 폭력을 휘둘러버린다.“나를 끌어올려 주는 거지, 너희들은 아니야.” 노파의 두려움은 그저 양파 한 뿌리라는 물질에만 머물러있었기 때문이다. 양파 한 뿌리의 진정한 의미,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의 무게를 보지 못했다. 노파의 말대로 노파의 양파였다면 노파 한 명도 매달릴 수 없었을 텐데. 노파는 양파 뿌리를 잡고 불바다를 벗어나는 순간에도 양파 한 뿌리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자비와 은총을 베푸니 너도 울부짖는 저 사람들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라고 준 기회를 놓쳐버렸다. 다시 조금 오래된 일이다. 딸아이와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었다. 횡단보도가 꽤 길어 조바심이 난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그런데 딸아이가 내 팔을 자꾸 끌어당기며 천천히 걷자는 게 아닌가. “곧 빨간 불로 바뀐단 말이야. 빨리 가자.” “엄마, 저기.” 딸아이가 느릿느릿 걷는 할머니를 가리켰다. 나는 딸아이와 할머니 뒤에 서서 스르륵 스르륵 걸었다. 갑자기 오래된 이 일이 생각나 벌써 양파 한 뿌리의 좋은 일을 저축해 놓은 안도감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양파 한 뿌리의 좋은 일에도 하느님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게. 양파 한 뿌리의 좋은 일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중앙일보 그런데 어제 읽은 글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지구의 절반 삼십팔억 명의 재산과 부자 스물여섯 명의 재산이 같다.(「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 보고서(2019. 10. 21.)」에 근거)’ 오늘도 아브라함은 소돔을 구하기 위해 열 명의 의인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