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한일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정부는 지난 3월 6일 새로운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 기업에 의해 강제징용 피해를 입은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제3자 변제’로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랜 세월 한일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많은 종교·시민 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우선 우리 정부가 자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사법 주권 훼손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사죄 및 가해 기업 배상이 빠진 점에 대해서는 이를 간절히 요구했던 피해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가톨릭교회는 참 평화를 위한 용서와 화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상호 용서가 정의에 대한 요구를 묵살해서는 안 되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막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와 반대로, 정의와 진실은 화해에 필요한 실질적 조건들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17항)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일본 삿포로 교구장 가쓰야 다이치 주교 Ⓒ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지난 2019년 8월 일본의 삿포로 교구장 가쓰야 다이치 주교는 한일 정부의 화해를 향한 담화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발표했던 이전 담화에서처럼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당시 일본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의 책임을 맡고 있던 가쓰야 주교는 담화에서 “현재 일본과 한국 간 긴장이 심층적으로는 일본의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그 청산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원인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일본이 과거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를 한 역사를 가진 나라에 대해서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 문제 해결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기초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대화하는 것 이외의 길은 없다.”는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지난 2022년 10월 미국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2022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정의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동북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민족화해위원회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다시 한번 한국, 일본, 미국의 가톨릭교회가 연대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지상의 평화이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교회는 진실과 참회를 통한 평화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적대와 두려움이 가득한 이 땅에서 한미일의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