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석 시메온 신부(인창동성당 주임) Ⓒ 픽사베이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30대 이상이신 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목놓아 외쳐봤던 응원 구호라 생각합니다. 잔디 운동장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 뿌연 흙먼지 속에서 맑고 귀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운동회 때의 아련한 추억입니다. 최근엔 심각한 인구절벽과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이 상큼한 소리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어린이들이 뛰놀며 쏟아내는 맑은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은 어느 공동체에게든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게 사실인데, 많이 아쉬운 우리들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건너편에서 어린이들이 깡충깡충 뛰며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보면 새삼 너무 반갑고 눈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까지 드는 것은 저만 품고 있는 유별난 감성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청군이든 백군이든 어릴 적에는 순수하게 자기 편이 이기기만을 애타게 바랬는데, 나이가 들면서 응원하는 구호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기는 편 우리 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처음엔 웃자고 한 얘기였는데, 어느새 삶의 지혜로까지 그 위상이 올라가 버린 사례가 되어 버렸습니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가 낳은 한 단면입니다. 한때 대법원에서조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희대의 판결문까지 내린 걸 보면 우리 시대 지성인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줄 잘 서서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기회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어쩌면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라고 합리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한 사람의 주변인들, 특히 그 사람이 기회를 잡는 과정에서 억울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공정과 상식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 시대에는 어떻게 살았든, 우리 시대만큼은 이런 세상이 계속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건 우리들 모두의 연대 책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기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가산을 다 팔아 독립운동을 했던 유공자들의 후손은 해방된 조국에서 명예는커녕 단칸방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지난날의 치부가 드러날까 걱정했던 이들은 똘똘 뭉쳐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끼리의 정보 소통 능력까지 탁월해서 집과 땅은 물론이고 고위직까지 독점하고 있습니다. 북쪽에 대해서는 세습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재산과 특권 세습은 되레 자기들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장으로 삼고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학교 폭력을 다룬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어둡고 부끄러운 단면이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져서 처음엔 많이 불편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모습은 우리만 겪는 아픔이 아니라는 사실이 공감을 형성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한때 무기력한 약자였지만 그 현실에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삶을 통해 성공(?)한 자리에 있는 자들을 끌어내리는 모습에 공감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세계 각국 간의 외교 현장에서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강대국의 입김에 묻혀지는 제3국가를 비롯한 수많은 약소국들의 당연한 권리와 목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끌려간 10대, 조선의 앳된 얼굴들. 잔혹한 일제 강제징용의 역사(1945)’ Ⓒ 한겨례 블로그 제동 이제 며칠 후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합니다. 대법원에서 내린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징용자들에 대한 배상금 판결을 최근에 뒤엎은 현 정부 관계자들이어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한 인식이 검찰 출신들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이기는 편 우리 편, 힘센 사람 줄에 서는 게 삶의 지혜’라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체득한 그들에게서 우리 서민이나 민족의 자존심 같은 건 하찮은 액세서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전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역사 인식이나 국민통합 분야에서는 북쪽에 할 말이 없어 보입니다. 해방 직전까지만 해도 같은 역사를 살아왔던 우리 민족이 점점 더 그 이질감을 심화시키는 국면입니다. 우리는 어느 편을 응원하고 있습니까? 같은 말, 같은 역사를 지니며 살아가는 우리 민족이 바라봐야 할 첫 상대는 누구입니까? 동전 몇 푼에 구세주를 십자가형에 처하라는 군중의 목소리가 되지 맙시다. 기회주의적인 달콤한 말에 흔들리는 우리가 아니라, 화해와 일치를 향한 몸짓으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뜨거운 민족으로 거듭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