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지난 사순 기간 주일에 강원도 화천에 있는 하나원을 오랜만에 찾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원의 정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北韓離脫住民定着支援事務所)’인데, 명칭 그대로 탈북민이 남한에서 잘 정착하도록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해마다 수천 명에 육박하는 수가 남한에 들어왔던 시절에 공사를 했기 때문인지 ‘화천 하나원’은 대지도 넓고 건물도 웅장했습니다. 사실 탈북민 입국자 수는 2012년부터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고, ‘코로나 사태’ 이후인 작년과 재작년에는 겨우 60명 정도가 입국했다고 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하나원이 더 스산하게 느껴졌습니다.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화천 하나원 Ⓒ 화천=연합뉴스 그날 ‘천주교반’에는 두 명의 남성이 찾아왔습니다. 전체 교육생 수가 적었기에 소수의 ‘예비자’도 반가웠습니다. 개신교나 불교가 아닌 천주교로 찾아온 이유를 물으니 한 분은 삼십여 년 전 남한에 먼저 온 아버지가 천주교로 가라고 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소년 시절 헤어졌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이 상기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표정의 다른 남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아들’이 천주교반에 오길래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조금 어색한 인사를 나눴고 그렇게 미사 전 ‘교리’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민화위 활동을 설명하다가 북한과 남한, 전쟁과 군사훈련, 김일성과 교회 조직 등 다양한 대화 주제가 이어졌는데, ‘따라온’ 남자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갑자기 십자고상을 가리키며 질문했습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까? 왜 저렇게 고통을 받는데, 저런 사람을 섬긴다고 합니까?’ 부조리, 그리고 동시에 구원의 상징인 된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두서없이 설명하면서, 이 남자가 세례를 꼭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를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십자가가 강렬하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가 겪었을 인생을 그려보면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이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에 대해서 저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평화는 너무 멀리 있지만, 십자가의 신비를 믿는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분단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