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 베드로 신부(민족화해센터장)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지고 지금 꽃잔디와 야생화들이 피워낸 꽃들이 한창입니다. 가장 추운 곳 중의 하나인 이곳 파주의 지난 3-4월 풍경입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이 죽음의 부활처럼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지난 3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마치 터널 속에 있었던 것처럼 어둠과 혼돈의 시간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시작이었던 2020년 3월 27일을 떠올려 봅니다. 격리, 통제, 셧다운 등의 언론 보도의 단어들이 지면을 가득 채울 때였습니다. 전 세계가 어둠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로마 바티칸의 베드로 광장에 흰옷을 입을 한 사람이 약간 절뚝거리는 모습으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성주간을 한주 앞둔 그날 교황님은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메시지와 강복을 주시려 광장 제대 위로 올라가십니다. 이 장면이 저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희망의 불씨는 아무리 짙은 어둠이라 할지라도 그 불씨를 꺼뜨릴 수 없음을 그제야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로마 바티칸의 베드로 광장에서 제단을 향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모습 Ⓒ 바티칸 미디어 채널 그 이후 교황님은 끊임없이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 모두에게 전해 주십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우리가 이번 위기를 겪고 나면 더 선해질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희망의 불씨를 봅니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요구로 시작되는 변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근간에 두는 변화, 우리에게는 이런 근원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위기’를 해석하기를 ‘위험’과 ‘기회’가 합쳐진 의미를 지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에게 이 ‘위험’과 ‘기회’의 두 선택지를 주었습니다. ‘위험’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을 성찰해보고, ‘기회’로써 새로운 희망과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새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심(?)의 계기가 된 사건이 있습니다. 2022년 2월 24일, 세계의 평화를 깨는 또 하나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또 하나의 세계 재앙이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세계 대전이 또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 부정적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애쓴 우리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모두 공멸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전쟁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의 염원에 불쏘시개가 되었습니다. 1968년부터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이 교황님의 덕담처럼 온 세계의 신자들에게 전해집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은 평화의 날 첫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의 날’은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에 맞서 평화를 수호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민족 간의 관계에 남아 있는 이기주의의 위협과 인류의 일부가 자신들의 생명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받지 못해 절망한 나머지 폭력에 호소하게 될 위험이 항상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평화주의가 아닙니다. 평화는 비겁하고 게으른 삶의 모습을 감추는 일이 아니라, 가장 고귀하고 보편적인 삶의 가치, 즉 진리, 정의, 자유와 사랑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전쟁으로 우리의 평화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다시 평화를 외쳐야 하는 그 이유를 여기서 찾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우리의 가장 고귀하고 보편적인 삶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외치는 일은 진리를 외치는 일이며, 자유와 사랑을 선포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매일 평화의 메시지를 마음에 담고 살아갑니다. 평화의 영성! 살아 있지 않은 것, 즉 움직이지 않는 것에는 ‘영성’이 머물 수 없다고 합니다. 전쟁과 죽음 안에는 ‘영성’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평화의 영성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기에 우리는 평화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평화의 외침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절실하기에 더욱 큰 소리를 우리는 평화를 외쳐야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아이러니하게도 공포와 죽음의 위협과도 같은 이 두 사건은 제게 평화를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그 장소에서 평화의 여정을 향한 첫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민족화해센터에 부임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민간인 출입 통제선 제한 구역인 민통선 통일촌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남북 간 일체의 교류가 끊긴 지금 우리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합니다. 통일촌에서 저멀리 인공기와 태극기가 함께 펄럭이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멈춰버린 것 같은 남과 북의 현실을 생각하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평화의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 다짐해 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우리가 다시 시작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평화를 외치고, 평화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것!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태극기 800m 건너편 인공기 … Ⓒ 한겨례 얼어붙은 동토처럼, 남북간의 관계는 냉혹하지만 다시금 한반도에 평화의 봄 기운에 오리라는 희망을 지니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자 다짐해 봅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이 바라셨던 그 평화의 꿈을 우리도 함께 마음속에 되새기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평화를 원해야 합니다. 평화는 사랑받아야 합니다. 평화가 태어나야 합니다. 평화는 도덕의 결과여야 합니다. 평화는 자유롭고 관대한 정신에서 솟아올라야 합니다. 평화가 단지 꿈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꿈은 인간의 새롭고 우월한 관념의 힘으로 하나의 현실이 되는 그런 꿈입니다.”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평화를 향한 희망의 꿈을 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