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원대학교 수료) 북한에서는 냉장고를 냉동기라 부른다. 냉장고 안에 나뉘어 있는 냉장 및 냉동칸도 다르게 부르는데 냉장칸은 냉동칸, 냉동칸은 극동칸으로 남한과는 조금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어렸을 적 처음 접한 냉장고는 89년도에 생산된 소련제 냉장고였다. 인민학교(초등학교) 시절까지 사용했던 그 냉장고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마크가 냉장고 문 정면에 큼지막하게 붙어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냉장고를 가지고 있는 집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9년 7월 1일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 모습 Ⓒ 게티이미지 그 러시아제 냉장고는 오늘날 흔히 접할 수 있는 냉장고처럼 냉장칸과 냉동칸 문이 따로 있지 않고 하나의 문을 열면 그 안에 냉동실 속문이 하나 더 있는 형태로 중형크기였다. 냉장고 문 중간 위쪽에 붙어있는 마크는 동그라미 안에 비둘기가 있고 그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다양한 색깔의 반원들이 꽃잎처럼 살짝 겹쳐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였다. 마크의 지름이 대략 20㎝ 정도 크기였던 걸로 기억되는 냉장고의 브랜드는 “지나르”였다. 어른들의 말을 귀동냥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지나르는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 때 외국인들의 숙박 시설로 사용한 광복거리 아파트에 비치됐던 냉장고인데, 행사가 끝난 이후 일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외부로 흘러나왔다고 했다. 동네에 몇 안 되는 냉장고라 부러움을 많이 샀다. 특히 여름이 되면 얼음과자를 만들어달라는 이웃들의 부탁도 많았다. 얼음과자래 봤자 막대형 아이스크림 틀에 사카린 물이나 설탕물을 넣어 얼리는 게 고작이었지만, 무더운 여름철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이 지나자 냉장고를 사는 집이 늘었다. 주로 일본에서 수입된 중고냉장고였다. 우리 집도 러시아제에서 일본제 중고냉장고로 바뀌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음의 변화였다. 러시아제를 사용할 때는 소음이 큰 편이었는데, 확실히 일본제의 냉장고는 소음이 적었다. 그래도 일부 어른들은 러시아제가 소리는 요란해도 더 빨리 얼고 수명도 길다고 얘기했다. 1990년대 소위 잘 사는 집의 상징은 이른바 5장 6기였다. 5장으로는 이불장, 옷장, 책장, 장식장, 찬장이었고, 6기로는 텔레비전수상기, 녹음기, 냉동기(냉장고), 세탁기, 선풍기, 재봉기다. 너도나도 이런 살림살이 구색(具色)을 갖추려고 애썼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의 1990년대는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시기다. 한국은행 추정치에 따르면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북한은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5장 6기는 허영의 상징이기도 한 셈이다. 전기사정이 나빠지면서 6기의 사용률은 현저히 낮아져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중고 가전제품의 수요는 꾸준했다. 정전(停電)시간이 길어지자 냉장고는 장식용이 돼버렸다. 북한 사람들은 극동칸(냉동칸)안의 식품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는 냉장고를 하루 최소 4시간 이상은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기준도 위험한 수준이었다. 요긴한 때에 쓰려고 냉동해 아껴두고 싶은 식자재가 있어도 전기가 부족해 소금에 절이거나, 그냥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전기가 정상화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다른 한편으로는 비싼 돈을 주고 산 냉장고가 아까운 마음이 들어 아무도 냉장고를 버릴 엄두를 내지 않았다. 냉장고는 결국 많은 집에서 수납장으로 사용됐다. 책이나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들을 넣어두는 보기 좋은 수납장! 냉장고의 감춰진 기능이라 하겠다. 북한의 관영매체들에서 방영하는 화려한 평양의 밤거리나 일부 지방 도시의 꽤 괜찮은 야경을 접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북한의 전기사정이 나아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 위기로 북중 무역이 제한된 가운데 수출용 석탄이 내수로 풀리다 보니 에너지 사정이 나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과거보다 에너지 사정이 좋아졌다 해도 냉장고의 기능을 충분히 사용할 만큼의 전기공급 시간과 전압이 보장될지는 의문이다. 북의 냉방 인프라 부족 Ⓒ MBC 통일전망대 (2022.7.22.) 올해 들어 북한에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코로나 위기가 심각했던 최근 몇 년 대비 지난해는 적어도 북중 무역이 조금씩 늘었고 식량 생산도 예년 수준을 기록한 점을 감안할 때 다소 이해가 안되는 점이 있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이른바 3중고(대북제재, 자연재해, 코로나19)가 수년간 누적된 영향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곧 무더운 여름이 닥친다. 냉장고라도 제대로 돌릴 수 있다면 북한 주민들이 한결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