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레슬리 그로브스(왼쪽) ⓒ 위키피디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기 수개월 전인 1945년 4월 27일, ‘원자 폭탄 표적 선정 위원회’(Target Committee)란 이름의 특별 기구가 설립됩니다. 미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이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Leslie R. Groves Jr.)에게 원자 폭탄을 어디 지역에 사용할 것인지 선정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관계자들이 모여서 “어디를 때려야 잘 때렸다고 소문이 날지”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위원회의 멤버 중에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폰 노이만 등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1945년 5월 10일과 11일에 작성된 회의록을 보면, 한 연구자가 원자 폭탄을 투하할 표적 선정을 위해서 자신이 수행한 작업을 설명하는데, (1) 직경 3마일 이상의 대도시 지역에 있는 중요한 표적일 것, (2) 폭발로 효과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 (3) 이듬해 8월까지 공격을 받지 않을 것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토, 히로시마, 요코하마, 코쿠라 무기창, 니가타 등을 이러한 조건에 충족하면서 공군이 (원폭 투하를 위해) ‘예약’해 놓을 수 있는 목표지점으로 꼽았습니다. 특히 교토와 히로시마가 AA 표적으로 분류됐는데, 일본의 옛 수도인 교토는 인구 백만 명의 도시로 심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일제에 가장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곳으로, 히로시마는 도시가 광범위하게 파괴될 수 있는 크기이며 인접한 언덕이 있어서 집중 효과로 폭발 피해가 상당히 커질 수 있다고 분석됐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천황궁에 대한 폭격 가능성도 논의했지만 그 효과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교토, 히로시마, 요코하마, 코쿠라 무기창 등 네 곳이 처음으로 추천된 원폭 투하 타겟이 되었습니다. 원자 폭탄의 사용을 두고 일제가 잘못했기 때문에 마땅한 벌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분명 전쟁 범죄와는 관련 없는 수 없이 많은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원폭이 오히려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가정도 죄 없는 어린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살상 무기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느님 나라는 ‘아흔아홉 마리 양떼’를 위해 ‘한 마리의 양’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를 찾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