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장) ‘유엔사’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유엔군사령부는 일반인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유엔사가 도대체 뭐길래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 정부와 야당을 유엔사를 흔드는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극언을 했을까?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자유총연맹 행사에서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부르고 다녔습니다.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 평화주장이었습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한 것도 문제지만, 사실관계를 왜곡시켰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유엔기 (주한유엔군사령부) © 뉴스1 ‘종전선언’을 하면 유엔사가 해체된다는 주장과 유엔사가 있으면 북한이 침략할 때 자동적으로 유엔사 참가국들이 참전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2006년 11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제안해 논의가 시작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정치적 선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자는 아이디어였다. 70년째 휴전 상태에 있는 전쟁을 끝내겠다는 종전선언이 유엔사와 무관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적 선언이 곧장 유엔사 해체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다. 실제 미국은 종전선언 논의 이후 유엔사를 더욱 강화시켰다. 또한 유엔사가 있으면 북한이 남침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유엔사 참가국들이 자동으로 참전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유엔사 참가국들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는 의회 비준 등 국내적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숱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유엔사 창립과 변천 유엔사가 도대체 뭐길래 윤 대통령은 유엔사를 비판하는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보는 것일까? 유엔군사령부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안보리 결의(1588호)에 의해 자유 진영의 한국전 참전을 위해 만든 기구이다. 유엔사는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전쟁 수행자에서 정전협정 관리자로 변모한다. 정전협정의 서명 주체가 유엔군사령관과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이 되면서 한반도 남쪽에서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한국군은 협정 체결과정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 권한이 없다. 유엔사는 이후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될 때까지 주한 미군과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행사하며 정전협정 관리와 한국 방위 임무를 주도하였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 내 유엔군 겸 주한미군 사령부 본부(사진=VOA) 유엔사의 위상이 크게 바뀐 것은 1970년대 초반 국제정세의 변화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을 대신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고, 제3세계 비동맹국가들이 대거 유엔에 가입하면서 유엔 무대에서 미국의 발언권이 약화되었다. 공산 진영은 유엔에서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1975년 11월 유엔 제30차 총회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최대 화두가 되었다. 유엔 총회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가운데 유엔사 해체와 유엔군 철수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미국은 이같은 정세에 대응해 한국 방위 임무는 새로 창설된 한미연합사령부로 넘기고, 유엔사는 정전협정 관리 업무만을 맡게 하였다. 현재 미국군 4성 장군이 주한미군사령관 · 한미연합사령관 ·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는 구도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유엔사 위상이 다시 논란이 된 것은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 때문이다. 한미간 전작권 전환과 함께 한미연합사령부가 미래사령부로 바뀌고, 사령관을 한국군 장성이 맡기로 합의하면서 미국은 다시 유엔사 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유명무실하다는 말을 듣던 유엔사의 조직 · 인력 · 기능을 2014년부터 꾸준히 확대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 줄어들 주한미군의 역할을 유엔사를 통해 유지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미국 일각에서는 유엔사가 한국군 · 주한미군을 포함한 모든 유엔사 전력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사 논란 유엔사에 대한 한국사회의 비판이 거세진 것은 한국의 주권을 유엔사가 정전협정 관리자라는 명분을 내걸고 수시로 침해했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유엔사는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사안에 한해 비무장지대 출입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지만, 비군사적인 출입까지 간섭해 논란을 일으켰다. 유엔사는 △2018년 8월 남북철도 경의선 북쪽 구간 현지조사 △2019년 6월 태봉국 철원성터 남쪽 지역 현지조사 △2019년 6월 한·독 통일자문위원회 고성 감시초소 방문 △2019년 8월 통일부장관 대성동 마을 방문 기자단 출입 △2019년 10월 전국체전 100회 기념 공동경비구역 성화 봉송 등을 모두 불허했다. 비무장지대 출입을 불허할 때마다 ‘안전’한지를 증명하라고 하는데 명확한 기준도 없었다. 이름뿐인 유엔사가 남북한이 합의해 진행하는 교류협력을 사사건건 방해했던 것이다. 7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미봉적인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데 한국인은 물론 양식 있는 모든 인류가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유엔사 위상도 이 흐름에 맞춰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6.25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만들어졌고, 정전협정 이후에는 협정 관리 역할을 해왔던 유엔사는 평화협정 체결로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면 폐지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유엔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거해 미국이 주도해 창설되었고 미국이 그 사령관을 임명해 지휘하기 때문에 그 해체 여부도 미국 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전협정이 종료되더라도 유엔사는 한반도에서 평화협정의 이행 · 준수를 감독하거나 새로운 평화유지활동을 수행하며 계속 잔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지 주장은 오래갈 수 없다. 유엔사의 월권이 지속돼 한국 여론이 악화되고 유엔사 존폐 논란이 커진다면 한미 양국 국익에 도움될 리 없다. 미군은 유엔사 형식이 아니더라도 한미 합의에 의해 얼마든지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다.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다면 주변국들에 대한 설득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억지 논리를 펼치기 보다는 당사자인 한국인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