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 사진 = '나의 가족. 권영균 형제' 아라리오갤러리 얼마 전 잘 아는 일본 신부님으로부터 ‘이산가족’을 도와주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시모노세키에서 이주민 사목을 하시는 분인데 재일동포 가운데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사람들도 열심히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동포 ‘조선족(朝鮮族)’ 가족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추방당한 이들은, 현재 부모는 한국에, 미성년인 딸은 중국에 체류하고 있었습니다. 조중 국경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20여 년 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열심히 일했고 일본에서 태어난 딸이 중학생으로 성장할 때까지 세 사람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숨겨왔던 체류 신분이 결국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선처를 기대하면서 자수한 것이 화근이 된 것입니다. 떳떳한 신분으로 일본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고 싶었지만, 결론은 강제퇴거 조치였습니다. 일본인처럼 자란 딸과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으로 가기는 어려웠습니다. ‘송환기피자’가 된 아버지는 어린 딸과 아내를 대신해서 4년이란 세월을 강제 수용소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딸은 중국에 있는 조부모의 집에서 머물고 있지만,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꿈은 세 가족이 한국에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는 ‘중국교포’ 부모와 달리, 일본에서 태어난 딸의 한국 체류 문제가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이들을 동반한 도쿄 가톨릭센터의 직원과 일본 신부님, 그리고 아이의 부모와 함께 우리 교구의 이주사목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비자 해결이 어렵다는 건 모두 잘 알고 있었지만, 한일의 신부님들과 활동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해 계속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일본인 활동가에게 무언가 감사의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민족을 끝까지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뜻으로 말했는데 통역하던 ‘조선족’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았습니다. 헤어질 때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우리를 같은 민족이라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민족이란 말은 유행이 지난 것 같은 시대지만, 여전히 민족이라는 말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한가위에는 흩어진 우리 민족들에게 성모님의 위로가 전해지기를 더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