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찬 나보르 신부(법원리성당 주임신부) 사랑은 상대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한다. 하느님께서도 우리 인간에게 길들여지기를 마다하지 않으셨기에 사랑하는 외아들을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보내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께 길들여 지기를 꺼린다. 요즘 내가 가장 마음을 쓰는 것이 무엇인가를 떠올려본다면 그 답을 알 수 있다.인간은 무엇인가에 길들여지면 오직 그것만을 찾아 헤매게 된다.그렇게 세상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돈과 권력, 약물과 폭력에 길들여지고 있다.“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태오 14,21)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길들여지는 방법이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태오 12, 48) 이 말씀을 묵상할 때면, 예전 S전자 광고 문구인 ‘또 하나의 가족’이란 말이 떠오른다. 우리의 혈연적 형제자매 개념은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이제는 신앙의 형제자매들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가운데 새로운 형제자매의 관계를 맺게 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공동체 이웃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 삼성전자 광고 갈무리 평화(平和)라는 한자의 뜻을 풀이해보면 골고루 밥을 먹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은 얼마나 화목하고 평온한 상태인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다. 식구(食口)와도 그 의미가 잘 어울린다. 신앙인은 무엇인가를 받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줄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이다. 우리 본당이 평화의 공동체, 이웃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매주 목요일 10시 미사 후, 미사에 나오신 분들과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다. 그래봤자 다해서 이십 명이 채 안 되고 어르신들이 많기에 식사 준비는 상대적으로 젊은 육칠십대가 맡아서 한다. 가끔 형제님들도 참여해 숨겨놓은 음식 솜씨를 뽐내기도 한다. 말 그대로 ‘또 하나의 가족’ 그 ‘잡채’이다. 올해 추석은 대체 휴일까지 포함하여 6일이나 쉬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뉴스에서는 추석 연휴 동안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역대급’이 될 거라고 얘기한다. 언제부터인가 명절 때에 고향이 아닌 여행이나 휴가를 가는 문화가 전혀 낯설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곳은 어르신들이 많기에 설이나 추석 명절에는 고향을 찾아온 가족들이 제법 성당을 찾았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그 수가 많이 감소하였다. 사실 코로나 팬데믹은 설이나 추석 명절에 자식들이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수 있는 합법적인 명분이 돼주었다. 그런데 코로나 종식으로 그 좋은 명분이 사라져버렸다. 마찬가지 이유로 성당에 나오지 않을 수 있었던 명분이 사라졌음에도 성당에 다시 나오는 신자들의 수는 코로나 이전보다 확실히 줄었다. 뉴스를 보면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다시 예전의 명절 분위기로 돌아가는 탓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젊은 세대에게 있어 이제 명절은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명절의 이미지는 행복함과 따뜻함이다. 점점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 간소해지고, 해외여행과 휴식을 취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만큼, 앞으로 명절은 가족의 따뜻함도 느끼면서 개인의 안정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무쪼록 평화롭고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추석 귀성길, '발걸음 가볍게 고향으로' Ⓒ 한경닷컴 하느님 집에 함께 머물며 기도하고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들, 하느님께 길들여지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또 하나의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