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 출처 : BBC 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회담으로 북한은 동북아를 넘어 미 본토를 포함한 전 세계 안보 환경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 30년 동안 미해결 상태로 있던 북핵 문제가 이제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큰 시름을 안기는 난제로 비화된 것이다. 북러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위성기술을 제공하고,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에게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논의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고립 해소 이번 회담으로 북한의 30년 고립 구도가 해소되었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이었던 중국·러시아는 1990년대 초반 냉전 종식 이후 한국과 수교한 뒤 북한을 홀대하며 사실상 방치했다.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나왔던 식량난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가뭄·홍수 등 자연재해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이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통해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통한 생존의 길을 모색한다. 미국은 중·러의 지원 아래 양자 · 다자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키려 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시작된 11번의 북한 제재 결의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북한을 더욱 고립시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회의모습(사진 출처 : SPN 서울평양뉴스(http://www.spnews.co.kr) 북한은 그토록 공들였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나자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사실상 포기하고 핵무력 고도화의 길로 매진한다. 이후 국제 정세가 크게 변화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은 미중 전략경쟁을 본격화했고 작년 2월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중국을 자신에 대한 ‘도전’, 러시아는 ‘위협’이라 규정하며, 중국에 대해선 쿼드·오커스·한미일 3각동맹 등을 통해 포위망을 강화했고, 러시아에 대해선 G7 등과 함께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러는 ‘제한 없는 협력’을 선언하였다. 이 같은 정세 변화는 북한에게 숨쉴 틈을 만들어줬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중국의 지원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북한에게 한·미·일 대 북·중·러 전선은 황금분할의 구도이다. 북·러 협력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유지하려고 하는 러시아의 이해와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외교적 활동 공간을 넓히려는 북한의 입장이 합치된 결과이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 대러 협력은 경제적 실리와 함께 극단적 중국 의존도를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외교의 최우선 목표였다. 더욱이 이번 보스토치니 회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탄 부족으로 곤경을 겪는 러시아가 북한 지원을 간절히 바라는 상황에서 이뤄졌기에 북한에게 유리한 회담이다. 북한의 각종 요구를 러시아가 물리치기 어려운 것이다. 지난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 북러정상회담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여파로 국내외적 곤경에 처해 있던 북한이 러시아에게 다급한 지원의 손길을 내미는 상황에서 이뤄졌기에 별 성과가 없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위성 기술 지원 외에 에너지·식량 등 각종 경제적 실리를 챙겼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차원의 군비 경쟁 예고 이번 회담에서 북·러는 유엔의 대북 제재를 무시하고 군사협력의 수준을 높이면서 미국에 커다란 타격을 안겼다. 북·러 협력은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는 명확한 전략적 목표 아래 진행되고 있다. 먼저 북한이 러시아에게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지원할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된다는 점에서 전쟁 피로감을 겪고 있는 미국에게 큰 부담이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의 언급대로 러시아가 북한에 위성 기술을 제공하면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북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미 본토 타격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에 북한이 핵잠수함 기술까지 얻게 되면 미국은 태평양에서 북한의 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미국으로선 치명적인 안보 위협이다. 또한 이번 회담으로 동북아 질서는 한·미·일 3각 동맹 대 북·러 군사협력 구도로 재편되었다.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합의했던 한미일 군사 밀착의 부작용이 현실화한 것이다. 여기에 중국까지 가세한다면 북·중·러 세 나라의 군사 협력이 이뤄질 수도 있다. 북·중·러 3국의 연합 군사훈련까지 시행된다면 한반도와 동해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군사력이 맞부딪치는 열전의 최전선이 될 것이다. 물론 중국이 국제여론 악화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의 극단적 관계 악화를 감수하고 3국 군사협력에 참여할 것 같지는 않다.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비 경쟁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할 것이다. 당장 지난 5월과 8월 실패 뒤 예고한 10월의 북한 정찰위성 발사가 성공할 경우 전 세계가 요동칠 게 분명하다. 위성과 탄도미사일의 발사기술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추후 북한이 ICBM 발사까지 성공시킨다면 한·미·일의 안보 위협은 급상승할 것이고, 자국 본토가 핵공격 위협을 받는 미국의 대응에 따라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미국으로서는 유엔을 통한 북한 제재가 유엔 안보리 거부권을 가진 중·러의 북한 비호로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에 마땅한 대응 수단도 없다. 일본과 한국의 국내 여론도 자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쪽으로 급속히 기울어질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동북아의 군비 경쟁이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앞장서 만든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AP 통신과 인터뷰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은 불법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협력”이라며 “국제사회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더 결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토록 엄중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대통령의 발언치곤 너무 한가하고 무책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