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디모테오 신부(일산성당 주임신부) 2021년 의정부교구 사제 서품식 2021년 2월 3일 입춘(立春),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염원하는 가운데 교구에서는 사제서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서품식에 참여해 보았지만, 매우 특별한 상황의 서품식 풍경이었습니다. 서품식에 참여하는 인원은 철저히 제한되었습니다. 수품자의 부모님, 신학교 추천 신부님, 수품자의 본당 신부님, 그 외 특별히 초대받은 신부님들과 관계자 이외에는 성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유튜브를 통해 시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 좋게도 수품자의 본당 신부로서 서품식에 참여하며, ‘응답하라 1994’를 떠올렸습니다. 1994년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던 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무더운 여름, 그것도 초복(初伏)날인 7월 13일,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서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은총에 푹 젖어 그날 저는 서품을 받았습니다. 서품식의 계절도 서로 다르고 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 역시도 완전히 대비되는 상황이라 3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두 장면들이 교차되는 가운데 서품식을 지켜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함께 기도하며 축하의 인사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왠지 모를 적막함 속에서 거룩한 예식을 진행하는 것도 의미는 있는 것 같다는 생각들이 함께 뒤섞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외형적인 부분에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로 인한 여러 제한에도 불구하고 서품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힘든 시간 속에 이루어진 거룩한 예절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른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이 시간들이 사제로서 첫 걸음을 시작하는 새신부님들에게는 특별하면서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그 소중한 기억들이 앞으로의 삶에 큰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서품을 받고 10여 년 정도 흐른 어느 날, 첫 본당의 신자로부터 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새신부로서 첫 본당에 부임하며 제가 신자들에게 했던 인사말을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물가물했던 그때 인사말을 다시 되새겨 주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부족한 신부를 이렇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을 보니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들고 환영하며 맞이했던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만일 예수님을 등에 태운 어린나귀가 자신을 위한 환호로 착각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제는 그 어린나귀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신자분들의 지극한 환대는 그 나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등에 업고 있는 예수님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대충 그런 내용의 말들이었습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잘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에 어긋나는 것이 많음이 사실입니다. ‘사제가 겸손하면 예수님께서 앞에 나서시고, 사제가 교만하면 예수님은 뒤로 숨어버리신다’라는 것을 늘 새기며 살아가려 하지만, 실제 모습이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서품식이 수품자들에게 큰 은총의 시간임이 분명하지만, 그 서품식에 함께 하면서 지난 시간들과 기억들을 떠올리는 저에게도 축복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나태해지던 마음을 새롭게 부여잡고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겠습니다. 서품식이 끝난 후 성당 밖으로 나오자 눈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축하의 꽃가루를 날려주고 있는 듯 했습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라디오 방송에서는 큰 눈을 예보하며 눈길을 조심하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 아닌 입춘대설(立春大雪)될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굵어지는 눈방울이 더더욱 정겹고 풍요롭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