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들의 패션 욕망

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수료) 북한에서 살던 2000년대 중반 어느 날, 나는 문득 ‘처녀!’라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처음 보는 얼굴에 ‘내가 잘 못 들었나’하는 생각이 스치며 돌아서려는 찰나 다시 말을 건네왔다. “그 가방 어디서 샀어요? 너무 멋있어서” 아, 그제야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다보며 나를 불렀던 영문을 알아차렸다. “OO시장 가방매장에서 샀어요.” 나의 대답에 말을 걸었던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 이제는 장마당도 많이 좋아졌구나. 난 외화상점에서 산 물건인 줄 알았어요. 처녀 보는 눈이 있구나야.” 나는 어렸을 적부터 패션 계통으로는 딱히 흥미가 없었고, 그쪽 방면으로 센스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맘에 없는 얘기를 했을 리가 없을 터, 이유야 어찌 됐든 칭찬이라 기분이 좋았다. 맘속으로 물건을 잘 고른 스스로를 칭찬하며 가던 길을 갔다. 아마 그때부터 입고 쓰는 물건들에 조금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나의 패션 센스는 트랜디하다고 볼 수는 없었으나, 옷차림과 함께 가방, 지갑 등 액세서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여성들이 귀걸이는 당연히 착용 금지 품목이었고, 목걸이도 단속 대상이다 보니 가방이야말로 유일한 사치성 기호품이기도 했다. 북한 김정은·리설주 부부의 액세서리 ⓒ미디어부/사진=연합뉴스 2010년대 리설주가 각종 액세서리를 하고 관용 매체에 등장하면서 북한 여성들도 귀금속 장식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TV로 보았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한국에서 실컷 하고 있으니 딱히 억울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 북한에서 살았던 것이 아쉽다. 북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을 그렇게 많이 갖고 있지 않다. 초등과 중고등을 거쳐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같은 교복을 입었고, 가방 색깔과 디자인도 똑같은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그나마 선택이 폭이 좀 넓어지긴 했으나 그마저도 깔끔하고 단정한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울리는 디자인만을 골라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고,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비슷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가끔 유난히 튀는 사람들이 지나가면 모두가 대놓고 쳐다본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과 어르신들은 놀리거나 욕도 했다. 아이들은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 혹은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다니는 여성들에게 무턱대고 ‘바람둥이’라는 말을 여럿이 한꺼번에 외치면서 따라다녔다. 상대방이 눈을 부라리며 돌아보면 도망가기 일쑤였으나. 어르신들은 ‘에고~저게 무스거요. 화냥년같이’라는 심한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그 정도의 욕을 들을 패션으로 무장한 여성들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촌스러운 노친네들’이라는 말로 무시했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는 두 가지 감정이 존재했다. 우선 멋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남의 신경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자유분방함에 대리만족마저 느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타인이 말밥에 오르내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었다. 북한이라는 경직된 사회에서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굳이 변명하면, 그때 나는 경제학 전공자답게 나름 그 사회에 맞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드러나는 가방보다 가방 속에 넣는 지갑은 가방보다 디자인 선택이 자유롭다. 북한 사람들은 안감이 빨간색으로 되어있는 지갑을 좋아한다. 안감이 빨간 지갑을 써야 돈이 빨리 회전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중국과 거래가 많은 상인이 아닐까 싶다. 일부는 비록 안감이라도 빨간색은 촌스럽다며 옅은 회색이나 블랙계열을 선호하기도 했다. 이제는 10년 전 얘기다. 지금 북한에는 ‘원수님 부부’ 패션을 모방하여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네트워크도 생겼다고 한다. 가장 잘 팔리는 아이템은 역시 리설주 가방인데, 수작업으로 브랜드까지 똑같이 만들어 진품과 짝퉁을 가려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북한의 4인 가족 평균 생활비가 대략 50달러(시장가격 기준)임을 감안했을 때 500달러 정도에 유통되는 리설주 가방은 북한의 “샤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돈주들을 중심으로 대기자가 줄을 서있다고 한다. 2018년 삼지연초대소 호수 산책 북한은 나름 ‘세련된 리설주동지’의 패션 감각으로 조금 더 자유롭게 미를 추구하고 드러낼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한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위로부터의 영향뿐만 아니라 소리 없이 변화하는 북한 주민들의 내면이 반영된 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암묵적인 금기도 여전히 존재한다. 일반 주민들의 패션은 반드시 ‘원수님 부부’가 보여주는 그 수준 이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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