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 대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한 정부가 민간인을 집단 학살했던 비극의 현장입니다. 보도연맹원들과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던 정치범들이 많이 희생됐는데, 살해된 사람의 수는 7천 명까지 이르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진짜 공산주의자’가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은 잠재적인 적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희생자들을 암매장한 구덩이를 합하면 그 길이가 1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합니다. 산내 골령골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데일리 워커>의 특파원으로 중국 혁명을 생생하게 보도한 앨런 위닝턴(Alan Winnington)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으로 파견됐습니다. 위닝턴은 1950년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대전 ‘골령골’을 방문했는데, 참혹한 학살을 기록한 그는 베이징으로 돌아가서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라는 제목의 책자를 출간했습니다. 위닝턴은 골령골에 6~12피트 너비에 6피트 깊이로 파인 구덩이가 6개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가장 큰 구덩이가 200야드였고, 2개는 100야드 가장 작은 것은 30야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골령골의 참상은 미국국립문서관리청(NARA)에 보관된 미군 문서를 통해서도 드러났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 소속 육군 무관 에드워드 중령은 「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Execution of Political Prisoners in Korea)」이란 제목의 문건을 작성해 1950년 9월 23일 미 육군 정보부에 보고했습니다. A-1 등급의 고급정보로 1999년에 이르러서야 기밀 해제된 보고서에는 18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으며, 다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울이 함락되고 난 후, 형무소의 재소자들이 북한군에 의해 석방될 가능성을 방지하고자 수천 명의 정치범들을 몇 주 동안 처형한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중략) 이러한 처형 명령은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위층에서 내려온 것이다. 대전에서 벌어진 1,800여 명의 정치범 집단 학살은 3일 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1950년 7월 첫째 주에 자행되었다.” 지난 11월 9일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산내 골령골을 방문했습니다. 민족화해분과위원들과 북향민을 동반하는 수녀님들은 안타까운 죽음을 기억하며 위령기도를 바쳤습니다. 주님,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