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외교의 딜레마

백장현(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회담하는 美·이스라엘 정상 Ⓒ 텔아비브 AP=연합뉴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 외교가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잣대가 이중적이어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위시한 국제사회로부터 냉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엔 헌장의 핵심 원칙을 위반했다며 러시아를 맹공격하며, 푸틴 대통령을 침략자이자 ‘전쟁범죄자’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과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오히려 이스라엘군에게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러한 이중성은 출범 이후 줄곧 민주주의와 인권 외교를 표방했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전 세계 시민사회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은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급증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유럽 곳곳에서 연일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표방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으며, 지난 11일 영국 런던에서는 시위 참여자가 30만 명에 달했다. 미국 내에서도 이스라엘을 비호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국무부 ‘이견 채널’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대량 학살에 공모하고 있다는 국무부 직원들의 의견서가 올라오고 있으며, 시민사회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 외교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외교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시절부터 미국우선주의와 거래지향적 외교를 추구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노선을 비판하며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전 세계를 독재와 민주주의의 대결장으로 규정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했으며, 국제법을 중시하는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 안정을 위해 민주주의 국가들의 결집을 호소했다.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는 유럽 등 자유 진영의 국가들을 결집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세계를 독재와 민주주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독재 국가인 중국·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중국 봉쇄를 위해 협조가 필요한 아세안 10개국만 해도 정치체제가 민주정·독재정·공산주의 체제·절대왕정 등 다양할 뿐 아니라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미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든 외교의 이중성과 위선에 대한 비판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로부터 집중적으로 터져나왔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도 대다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불참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 국가들의 외면까지 받으며 실효성이 제한됐다. 미국 역사에서 가치 외교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 지미 카터 대통령 등 여러 행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교의 전면에 내세웠다. 카터 행정부는 1977년 취임 이후 한국의 박정희 정권에 대한 인권 개선을 요구하며 주한미군 철수 등 강력한 압력을 가했기에 우리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카터 행정부도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정희 유신정권 이상으로 포악했던 이란의 팔레비 정권에 대해 다른 잣대를 적용해 비호했기 때문이다. 팔레비 왕정은 사바크라는 정보기관을 활용해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독재 정권이었지만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국익 때문에 인권 유린을 묵인했다. 힘으로 자신의 국익을 관철시키는 국제정치세계에서 민주주의·인권 등 가치를 내세운 외교는 이처럼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다. 가치와 국익이 상충될 때 국익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치 외교는 이중성과 위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1979년 6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방한 공식 환영행사 Ⓒ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정부 기록 사진집’ 발췌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 한국의 윤석열 정부도 가치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현재의 위기가 ‘가치와 이념, 국가 간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원칙과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자유와 연대를 외치고 있다. 각종 외교 무대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자유·인권·국제규범 등 가치를 수호하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에 대해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미·중·러·일 4대 강대국이 각축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분단된 채 남북한이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이 과연 가치 외교를 추진할 수 있을까?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운 외교 환경에서 ‘평화 유지’와 ‘통일 지향’이라는 핵심 국익을 도외시한 채 대한민국 외교가 자유·인권 등 추상적 가치를 선택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윤 정부의 가치 외교는 국력의 한계와 지정학적 어려움을 감안하지 않은 채 분수 모르고 나대는 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연대’ 주장은 가치 동맹을 지칭한다. 국제정치사에서 가치 동맹이 처음 나타난 건 1873년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가 맺었던 삼제(三帝) 동맹이다. 삼제 동맹은 3국 중 어느 한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나머지 2국은 군사원조를 하고, 동시에 3국의 황제는 일치단결해 공화정 혁명을 분쇄하자는 동맹이었다. 냉전 시대 자유세계 국가들이 공산주의자들의 전복 활동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을 약속했던 이데올로기 동맹도 마찬가지다. 동맹에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덧붙여지면 결속도가 높아지고 정서적 지지가 커지는 효과가 있지만, 물질적 이해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면 동맹국 간 공통 이해관계의 본질과 한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과도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데 그 결과 실망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명실상부(名實相符)해야 한다. 명(名)과 실(實)이 분리되면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초심도 잊게 된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외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가 주창하는 가치 외교는 기실 미국에 올인하는 외교를 포장하는 수식어에 불과하다. 자칫 윤 정부가 자유·인권·국제규범 등 근사한 말에 도취해 돌격 앞으로 하다가는 중국·러시아 관계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하루 빨리 정신차리고 실용으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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