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8강전 한국 대 북한 경기 Ⓒ 윈저우 뉴시스 지난 10월 3일 TV 뉴스에 북한이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북 여자 축구 8강전에서 우리 대표팀과 경기 소식을 전하면서 ‘남조선’이 아닌 ‘괴뢰’라고 표기하고 불렀다는 보도를 했다. 사전을 살펴보면 '괴뢰'(傀儡)라는 한자어는 '꼭두각시'라는 의미로, 주체성 없이 외부 세력의 조정을 받는 정권을 간주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남조선’을 ‘괴뢰’로 바꾸어 표기했다는 것은 그들이 남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낸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와 “약간”을 합해 ‘필요하다’는 46%, ‘필요 없다’는 26%로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은 줄고, 부정이 늘고 있다. 통일의 이유로 ‘같은 민족이니까’ 42%, ‘전쟁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가 31%,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가 10%다. 통일되지 말아야 할 이유로는 ‘통일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34%, ‘남북간 정치체제의 차이’가 21%, ‘통일 후 생겨난 사회적 문제’가 20%다. ‘통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 질문 자체가 되지 않았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흔히 부를 수 있는 동요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경제 중심,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갈라진 형제와 하나가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가를 따지며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여론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갈라진 같은 한 민족의 일치, 통일은 숙명과 사명이지 여론조사로 결정지을 문제가 아니다. 민족의 역사, 동질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변국에 의해서 강제로 나누어졌기에 더욱 그러하다. 갈라져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은 똑같은 사람이다. 같은 감정, 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더욱이 같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 비록 긴 분리의 시간이 만들어낸 차이가 있지만 이것은 만들어진 것이기에 부서지고 바뀔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더 높은 차원의 조화, 즉 동질성과 하나됨을 찾는 것이 통일이다. 정반합으로 한쪽을 파괴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 오리온 초코파이 상품 이미지 개성공단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우리나라 초코파이 포장에 ‘情’이 있다. 사람은 만남이 있어야 정(情)이 생긴다. 갈라진 남북 사람들의 만남의 장이 통일로 향하는 첫 단계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만남이 국내적, 국제적 상황 때문에 매우 어려워지고 막히고 있다.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발목을 움켜잡는다. 기득권 포기를 거부하는 권력자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위선자들, 1920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아직까지도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처럼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빨갱이”, 분열과 갈라짐 그리고 전쟁을 이용해 경제적, 군사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나라.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어떤 인식이 필요한가? 통일을 소망하는 것은 한 민족으로서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 민족, 한 가족이면서도 갈라져 분열되어있는 우리는 주님께서 바라시듯,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느님의 한 자녀들로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통일은 이데올로기 싸움이 아니다. 통일의 문제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서 미루어져서도 폄하되어서도 그들로부터 방해받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외교부에서 외교의 중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화, 협상 등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 지금 남북 관계를 평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는가?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국가에 이익이 되는가? 주변 국가들의 영향을 받는 지리적 위치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나라들이 언제 말을 바꾸고 정책을 바꿀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리와 명분만 믿는 것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인가? 광해군 때 중립 외교 정책을 폄으로써 어려운 정세에서도 외침을 피할 수 있었듯이 국가에 이익이 되는 외교와 우리 민족의 특이성을 바탕으로 자주적, 민족적, 평화적 일치를 위한 인식이 절실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