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신학자인 당신에게: 가톨릭 한반도 평화신학의 구상을 위해

조민아(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2023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기간 중 JSA성당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위령성월을 불과 며칠 앞둔 10월의 마지막 주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기에 나는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일정으로 남과 북 사이 비무장지대에 들어섰다. 생명의 기운을 느끼기 힘들만큼 죽음의 무게에 압도되었다. 마치 몸의 피부처럼 밀착되어 고통과 상실의 현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애도조차 없었던 70년의 세월은 전쟁과 분단을 에워싼 증오의 이데올로기로 채워지고, 편 가르기 정치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의 삶은 목숨을 빼앗긴 이들에게 빚진 채 죽음의 트라우마를 물려받았다. 이 대물림은 또 다른 폭력으로, 혐오와 차별로 전화되어 삶을 파괴한다. 이 참혹한 현실 속에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삶은, 평화는 아득히 멀어 보였다.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 서 있는 예언자 에제키엘의 환시가 떠올랐다. 지금 여기에서 평화를 말하는 우리의 입과 몸짓이 생명의 숨과 같은 예언이 될 수 있을까.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에제 37,8) 치유되지 못한, 아니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만들어 낸 모순투성이 현실만큼이나, 포럼에 참여한 이들의 고민들 역시 매끄럽게 정리되기 어려웠다. 그만큼 다양한 층위의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었다. 군비경쟁과 군사주의, 핵무기를 둘러싼 긴장, 기후 재난과 사회 인프라의 붕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젠더 갈등, 분쟁 가능성의 격화, 이에 따른 이주-난민들의 증가와 인권 박탈까지, 전 지구적인 위기가 마치 소우주처럼 응축된 것이 한반도 현실이다. 이 한반도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하고 살고자 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신성함과, 공동선의 추구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힘과 자본의 논리가 우위를 점하는 세상 한가운데에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평화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루어 낼 수 없는 ‘불가능의 가능성’인 것 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마른 뼈에 힘줄과 살이 올라 숨이 불어 넣어지는 이 평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정치의 혁신이나 탁월한 외교 기술 너머에 있는 무엇이다. 마음의 전향, 그리고 삶의 변화가 절실하다. 그러기에 신의 영역이다. 인간의 손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하느님의 손은 평화를 빚으신다.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에 그 평화가 깃들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포럼 기간 중 성당 앞에 마련된 ‘기억 제단’에는 청년 참가자들이 봉헌한 한국전쟁과 원폭, 그리고 불의한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물품이 놓여 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포럼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질문은 오래 지속되었던 고민을 우리의 일상으로 더욱 가깝게 끌어왔다. 젊은이들은 신자유주의 생존경쟁 속에 취업을 걱정하는 자신들에게 한반도 평화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약육강식의 세상, 나의 생존을 위해 남을 해쳐야 하는 세상, 힘에 의한 평화를 강변하는 세상에서 가난한 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자 이주민, 난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대로서, 혈육과 민족의 당위성을 뛰어넘는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물었다. 의견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양극화의 세상에서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평화가 가능한지 물었다. 평화 구축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온전한 정보 공유와 합리적인 절차를 교회 내에서는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물었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본당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신자들의 삶 속에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우리는, 과연 “마음의 혁명”이자 삶의 쇄신의 길로서 평화를 바라고 있는가? 생각과 지향, 언어와 작은 행동 습관까지도 변화시켜야 하는 이 지난하고 고된 평화를 살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신학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나에게 책임감과 함께 준엄한 경고로 다가왔다. 신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바깥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신학은 구체적인 일상에서 시작되며 그 안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그분의 뜻을 갈망하며 때로는 넘어지고 일어서는 체험 속에서 성장한다. 그렇다면 찢기고 갈라져 상처 가득한 현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트라우마가 뒤엉켜 각양각색의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 한반도 현실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독특하고 고유한 역사의 체험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삶과 밀착된 신학의 언어와 마음의 그릇을 우리 각자는 갖고 있는가? 우리의 신학은 폭력과 상실의 역사에서 비롯된 일그러진 삶의 모습을 바라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통로로서 기능하고 있는가? 분단의 현실이 요구하는 응답과 믿음, 연대와 실천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성찰로 나아가게 하는가? 처음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소식지의 칼럼 청탁을 받았을 때, 여러모로 부족함에도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질문들을 나에게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들을 앞으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풀어가고 싶다. 추상적인 신학적 개념보다는 갈라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의 언어로, 우리가 매일매일 겪으며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싶다. 분단의 현실이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과 노년에게, 또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과 난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 그 삶의 이야기들을 신학과 평화학의 언어로 풀어보면 어떨까? 이 칼럼의 지면이 이렇게 분단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마당이 되고 도화지가 된다면 좋겠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 있는 신자들을 문턱 없이 초대하는 사랑방이 되고, 폭 넓은 상상과 마음 깊은 성찰을 가져오는 마중물이 된다면 좋겠다. 다음 글에서는 가톨릭 한반도 평화 신학 구상을 위한 나침반이 될 몇 가지 원칙들을 짚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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