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수료)Ⓒ통일전망대 2023년 1월 21일 방송분 “북한의 설풍경 2023년 이날을 주목하라” 갈무리 #음식(떡국, 송편, 돼지고기)북한 사람들은 설에 어떤 음식을 먹을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다. 나이만큼의 떡국떡을 먹어야 한다는 속설도 있지만, 실제로 떡을 세어 먹는 사람은 없다. 떡국 육수로는 돼지고기를 주로 사용한다.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육류이기 때문이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주요 매체들에서 대표적인 설음식으로 떡국과 녹두지짐(녹두로 만든 전) 등을 소개하지만, 실제로 설에 녹두지짐을 해 먹는 집은 드물다. 녹두지짐은 감자전과 마찬가지로 소주나 막걸리 안주로 즐겨 먹고, 간식거리로 즐기기도 한다. 떡국과 함께 즐겨 먹는 설음식에 송편이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추석에 많이 먹지만, 북한에서는 설에도 빠지지 않는 메뉴다. 우리 주변 어느 동네에서나 떡집 하나쯤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아무 때나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떡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여전히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송편, 인절미 등은 명절에나 맛볼 수 있는 별식이다. 돼지고기, 생선 같은 것들도 특정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별식 중의 별식이다. 달걀, 두부 같은 음식들도 북한에서는 늘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북한에서 한 가정당 최소 100kg에서 200~300kg씩 만들어 놓는 김장 김치를 빼고는 다들 귀한 식재료다. 장마당(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예전과 달리 깨끗하게 손질되고 소량으로 포장된 음식 재료들이 많아졌다. 명절 음식이나 평일 음식이나 큰 차이가 없이 풍족한 집들도 늘었다고 하지만, 이는 북한의 일부 계층에게만 국한된 얘기다. 북한에는 여전히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래서 이들은 별식을 먹을 수 있는 설날을 기다린다. Ⓒ통일전망대 2023년 1월 21일 방송분 “북한의 설풍경 2023년 이날을 주목하라” 갈무리 #오락(윷놀이, 사사끼)남한에 설 특선영화가 있다면 북한에는 설 특별방송으로 방영되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평양과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텔레비전으로 즐길 수 있는 채널은 단 하나뿐이다. 그래도 설은 즐겁다! 아이들은 연날리기, 썰매타기 등으로 설 분위기를 내고, 어른들은 윷놀이를 하거나 주패(카드놀이를 이르는 북한 말)로 사사끼(카드놀이의 일종)를 한다. 사사끼는 카드와 사람 2명 이상만 있으면 가능한 데다가, 방법도 쉽고 재밌어 지역과 성별, 연령대를 불문하고 오랜 기간 북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담요 밑에 깔아두는 판돈의 액수가 참여자의 몰입도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설 인사(세뱃돈, 스승, 낡은 관습)설 인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세뱃돈이다. 아이들은 넙죽 엎드려 절하기만 하면 두둑한 용돈이 생기고, 어른들은 세뱃돈으로 지갑이 텅 비게 된다.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금액이 다른 것은 남한과 북한이 서로 비슷하다. 다른 점은 보통 가족들과 설을 보내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거주지에 있는 학교의 담임 선생님이나 기업소(기업)의 당위원장, 지배인 등 조직의 책임자를 찾아가 인사를 한다. 조부모님(혹은 부모님)들이 가까이에 사신다면 당연히 찾아가지만, 대체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가족들이 전부 모이는 것은 설날이 아니라 가족 중 누군가가 결혼하거나 상을 당했을 때에야 가능하다. 도(都)의 경계를 넘어 이동할 때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증명해 주는 것이 ‘여행증명서’인데, 이것을 발급할 때 여행목적란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모(혹은 부) 병 위급’, ‘조카 결혼식’, ‘제사’ 등이다. 여행증명서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 목적은 용납되지 않는다. 반드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해당 목적을 확인하는 것은 아니라서, 하나밖에 없는 조카 결혼식을 필요에 따라 여러 번 하기도(서류상으로) 한다. 목적지가 평양이나 국경 지역, 전연지대(군사분계선상의 전방지대)인 경우 여행증명서의 발급 절차가 훨씬 까다롭다. 그리고 이때에는 여행목적을 깐깐하게 확인한다. 물론 현금으로 뇌물을 찔러주면 한결 쉽게 해결된다. 낡은 관습도 여전히 남아있다. 여자는(어른이나 아이나 상관없이) 대체로 설날 오전에 바깥출입을 삼가야 한다.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물론, 자신의 집에서도 남편이나 아들이 먼저 새해 첫날 문을 열어야 한다. 설날 음식을 이웃들과 나눠 먹는 풍습이 있는데, 반드시 남자아이에게 들려 보내는 것이 일종의 이웃 간 설 인사다. 설날에 집 문을 처음 연 사람이 여자이면 ‘재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간혹 이웃집 딸이나 아내가 먼저 인사하러 오면 ‘예의가 없다’고 한다.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 경우에도 최대한 점심 이후에 인사를 가야 예의가 있다고 한다. 북한은 해방 직후 정권 수립도 하기 전인 1946년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했다. 북한의 이상과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사례다. 경제 영역에서는 끊임없는 혁신과 속도전을 추구하는 북한이지만, 정치·사회문화 영역에서는 왕조체제와 같은 사회시스템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민이 옛 시대의 낡은 관습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암묵적으로 압박한다. 겉으로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강조하면서도, 공자(孔子)의 말과 달리 군(君)의 책임은 슬그머니 밀어둔 채, 신(臣)과 자(子)의 충성만이 의무라고 한다. 청룡의 해인 갑진년 올해 북한 주민들에게도 기적 같은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 본다. Ⓒ통일전망대 2023년 1월 21일 방송분 “북한의 설풍경 2023년 이날을 주목하라”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