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원당성당 주임신부) 여러분은 쉬는 날 무엇을 하시나요? 그럼 본당의 신부님은 쉬는 날, 곧 월요일에 무엇을 하실까요? 어떤 신부님은 기도 영성 모임을 갖기도 하고, 어떤 분은 가족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 어떤 분은 운동을 하기도 하고, 조용히 쉬는 분들도 있습니다. 백인백색입니다. 저는 봄부터 가을까지 월요일마다 동창 신부님과 함께 산을 갑니다. 주로 북한산과 도봉산의 봉우리를 하나 오릅니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부터 의상봉, 원효봉, 숨은 벽 능선도 가고, 도봉산 주변의 여성봉, 오봉, 사패산, 양주시 양주순교성지 뒤의 불곡산, 천보산, 남양주의 천마산, 축령산, 동두천의 소요산, 포천의 운악산도 갔다 왔네요. 차로 한 시간 정도면 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고, 오르는데 두 시간 이내의 산을 갑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우리 교구 지역의 산들을 주로 다니고 있네요.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그저 가벼운 산책 정도만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마흔 조금 넘어서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몇몇 신자들과 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걸음을 맞춰주는 신자들의 도움으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들과 어울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주변 산을 찾아가게 되었고, 산에 오르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Freeipik 사실 등산은 쉽지 않습니다. 자주 다니는 사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산에서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발목을 다치기도 합니다. 너무 무리한 산행은 무릎에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여름의 산은 더위와 함께 산이 품은 습기로 더 힘듭니다. 몇 걸음만 가도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초봄이나 늦가을에는 산그늘에 얼어붙은 곳도 있고 낙엽 아래 서리가 있어 미끄러지기 십상입니다. 거친 바위를 오르다 정강이를 부딪히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긁히기도 합니다. 한없어 보이는 계단을 올라야 할 때도 있고, 밧줄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바위를 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힘든 날도 있습니다. 그래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꽃과 나무, 바위와 계곡의 다채로움이 언제나 새롭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려 앉은 그늘이 고마울 때도 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소리 없이 내리는 빛살이 따사로울 때도 있고, 얼굴을 훑고 지나는 바람이 반갑기도 합니다. 힘겹게 오른 정상의 탁 트인 시야가 주는 기쁨은 당연합니다. 봄에는 꽃향기를 맡고, 새순이 전하는 희망의 노래를 듣습니다. 여름에는 산 가득한 푸른 기운을 마십니다. 가을에는 찬란한 단풍의 색감에 취하기도 하고, 빈 가지를 흔드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산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옵니다. 여럿이 오를 때는 여럿이라서 좋고 혼자 갈 때는 혼자라서 좋습니다. Freepik 동창들과 오를 때는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와 고민을 나눕니다. 물론 풍문에 대해 떠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산-자연이 주는 스스럼 없음이 자신을 열고 솔직한 말을 꺼내도록 이끕니다. 어디 가서 마음 놓고 꺼내지 못한 속 깊은 곳의 이야기부터 사제로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 기도하며 성사를 집전하며 느낀 체험, 사목 현장의 문제들에 대한 고민,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걱정과 변화에 대해 서로 거리낌 없이 나누게 됩니다. 같이 웃고 떠들고, 믹스커피 한 잔과 간식도 나누고, 점심으로 싸간 김밥을 먹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금방 갑니다. 그만큼 가까워진 우리를 발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때로 홀로 산을 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같은 등반로를 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깊이 있는 대화까지는 못 해도, 같은 길을 간다는 생각이 주는 동질감이 마음의 거리를 좁혀줍니다. 걸음이 빠른 사람이 먼저 올라가지만, 저만치에서 기다리다가 ‘어서 오세요. 여기 바위가 널찍하니 쉬기 좋습니다.’ 하며 옆자리를 내주기도 합니다. 간식을 나누기도 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내려가면 서로 다른 길을 가겠지만, 이 산속에서는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길 위의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은 산행과 비슷합니다. 어울리는 사람과 함께 할 때도 있고 홀로 갈 때도 있습니다. 험한 길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부딪혀 오는 어려움도 있고, 상처 주는 사람도 있고, 위로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언제나 먼저 간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길을 찾고 제대로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의 길에는 언제나 다른 이들이 있습니다. 인사하고 나누고 함께 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신앙의 맛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신앙의 길은 언제나 명확한 목표가 있습니다. 정상,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느리더라도 언제나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힘내십시오! 정상이 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