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빈 멜라니아(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샬롬회 회원)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도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재일동포와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들도 여럿 생기고, 주요 언론사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특집 다큐멘터리 등을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뜨거운 것은 조선학교가 우리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분단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선학교를 향한 오해와 진실 조선학교에 대한 인식이 언제나 이렇게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관한 주요 언론사의 보도 역시 2018년과 2019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 정상회담, 잇따른 남북 협력의 분위기로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를 향한 기대와 전망이 넘실거린 시기였습니다. 조선학교에 대한 인식은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우호적으로 되고,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 다시 적대적으로 되기도 합니다. 이는 무엇보다 ‘조선학교는 북한학교’, ‘조선학교는 북한을 추종하는 재일동포들이 아이들을 보내는 학교’라는 오랜 오해 때문입니다. 일본의 혐오 세력은 더 나아가 ‘조선학교는 북조선 스파이를 양성하는 학교’라고 낙인찍고 조선학교 학생들의 한복 저고리 교복을 칼로 그어 찢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곤 합니다. 저 역시 처음 조선학교를 방문할 때에는 이러한 선입견과 오해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교무실에 들어서면 보이는 북한 지도자들의 초상화, 아이들이 사용하는 조금은 낯선 단어와 표현들, 우리는 모르는 분단 이후 북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교육 과정이 그런 오해를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혐오 세력에 의해 찢긴 조선학교 치마저고리 교복 ⒸKBS 한편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과 북 모두 재일동포들에게는 떠나온 고국인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홀로 참작해보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식견으로나마 느낀 것은 조선학교를 북한학교 또는 북한을 추종하는 학교로 보는 것은 오늘날 현실에서는 더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조선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국적은 한국, 일본, 조선적 등으로 다양하고 요즘은 오히려 한국 국적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학교의 민족 교육 또한 사상 교육이 아닌 이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한 정체성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고향은 한국, 조국은 공화국, 자란 곳은 일본 그렇다면 조선학교에서 느껴지는 북의 향기(?)는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 긴 세월 조선학교를 지켜온 것이 북한의 지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해방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조선학교를 탄압했고, 한국 정부와 사회는 그간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외면해왔습니다. 어렵게 민족 교육을 이어가고자 했던 동포 사회를 지원한 것이 북한이었고 북한은 매년 상당한 액수의 교육 원조비를 조선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를 도왔던 것이 북한이었기에 재일조선인들이 의지하는 곳 역시 북한이었습니다. 재일조선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설명하는 말이 ‘고향은 한국, 조국은 공화국, 자란 곳은 일본’이라는 말입니다. 재일조선인 1세 대부분은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남쪽 지방에서 일본으로 이주해 온 분들입니다. 4세, 5세 동포들은 증조부, 고조부의 고향이었던 남쪽 땅 어딘가를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한편 조선학교에서 북한의 지원으로 민족 교육을 받아온 동포들에게 공화국은 고마운 조국입니다. 그러나 정작 나고 자란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은 일본입니다. 재일동포 축구선수 안영학의 조선적 외국인 등록증 ⒸKBS 물론 한국인인 우리라고 다 같지 않듯, 재일조선인 역시 남과 북,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의견과 가치관은 복잡하고 다양하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 조선학교에서 아이들은 우리의 오해보다 훨씬 열린 교육 속에 자라고 있으며, 조선학교와 학교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정체성 역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편이냐고 묻는 우리에게 한편 개인적으로는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를 향한 “어느 편이냐?”는 질문이 불편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재일조선인은 식민주의와 분단이라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해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노동력으로 낯선 땅에 끌려가야 했고, 해방되고도 돌아올 수 없었으며 분단과 냉전의 차가운 대립을 온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오랜 세월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배척했고 때로는 냉전의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이렇게 항상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건만 정작 우리는 외면했던 이들을 향해 당신들은 누구 편이냐 따지는 손가락질하는 것은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수학여행으로 방문한 판문점 북측에서 남측을 바라보는 조선학교 학생들 모습 ⒸKBS 세상에서 가장 열렬하게 또 절실하게 통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재일조선인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그만큼 분단 현실이 주는 상처가 재일조선인들에게는 크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도 조선학교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한국도 북한도 일본도 모두 알고, 한국 드라마도 공화국의 문학도 일본의 음악도 모두 익숙한 드물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 역시 여전히 분단의 시대를 살며 차별과 배제 그리고 오해에 매일매일 맞서고 있습니다. 현실은 복잡하고, 화해와 일치의 길은 참 요원하기만 해 보이는 요즘입니다. 다만 조선학교 아이들이 마주할 미래가 좀 더 따뜻하고 밝기를, 지난날 재일조선인이 겪어야 했던 현실보다 좀 더 다정하고 풍요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를 상상하고 바라보는 봄입니다. ----------------------------------------------------------------- 사진 출처 : [4·24 기획] 재일조선인, 그리고 조선학교 / KBS NEWS 유튜브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