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근(다니엘) 신부 - 참회와 속죄의 성당 협력사제 여러분들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많은 시간 가족들과 함께 하고 계신가요. 우리가 5월을 가정의 달로 지내고 있는 것은 5월의 기념일 중 가정과 연관되는 날이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장 잘 알려진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21일 부부의 날, 5월 셋째 주 월요일 성년의 날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스승의 날로 알려진 5월 15일은 세계 가정의 날입니다. 이처럼 5월은 가정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5월 사목단상을 준비하면서 문득 어렸을 때 보았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떠 올랐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최초로 남북 간의 정식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은 1985년 서울과 평양 간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 행사 때입니다. 이 고향방문단은 남북 합쳐 100명의 이산가족을 만나게 한 행사로 이 중에 65명이 상봉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몇 번 더 이루어졌지만 점점 남북 이산가족의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면서 그 수가 적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북한을 생각하며 그곳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상봉하지 못하고 있는 슬픔은 많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들에게 북한은 교과서를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알게 된 지식을 가지고 머릿속에 그려 넣은 모습의 북한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북한이라고 하면 어렸을 때 늑대의 모습, 조선 시대의 복장, 초가집으로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반공 만화 때문이겠지요. 그런 이미지 때문인지 처음 북한에 대해 공부했을 때는 내 머릿속에 있는 어려서부터 자리를 잡았던 기억들이 북한을 공부하는 데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런 게 북한이라고 그려 놓고 공부를 하는 것이기에 북한은 때려 부셔야 하는 적으로 남을 뿐이었죠. 그러던 제가 북한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지식으로 북한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 것입니다. 즉, 많은 이들은 북한에 대한 인식을 머릿속에서 그려 넣고 거기에 맞추어 해석하기에 내가 생각하는 북한과 세계 속에 있는 북한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먼 시대가 지나고 남북 관계에 평화가 이루어진다면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와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누어진 시대를 비교하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평가할까요. 역사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기 위한 나침판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배운 삼국시대는 당시는 서로의 적이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의 시선에서는 한민족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선에서 북을 바라볼 때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가 서로 이해하며 함께 하는 순간 우리 역시도 삼국시대와 같이 한민족끼리 서로 다투고 있다고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혼인 성사를 하고 나면 신혼부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두 분은 혼인하고 나면 부부싸움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싸움을 했다고 서로 떨어져서 각방은 쓰지 마세요. 각방을 쓰다 보면 처음에는 하루 만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나중에는 한 달이 지나도 서로 보지 않고 지내게 될 것입니다. 한방을 썼을 때 마음은 서로 힘들 수 있지만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은 각방보다 빠를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대면입니다. 대면이 없이 서로의 상처만을 보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적과의 동침’처럼 말은 ‘한민족’이라고 부르면서 평화로운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소원'을 작사한 안석주(왼쪽)와 그의 아들 안병원 작곡가(오른쪽) Ⓒ 통일과미래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토요기도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 5시, 주일미사도 있음)에서 항상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6·25 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동요가 아니라 1947년에 만들어진 동요입니다. 이 곡은 해방 후 두 번째 맞이하는 3·1절을 위해 만들어진 동요로 처음 제목은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곡가는 해방은 되었지만, 독립은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합니다. 또 그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90년 12월 서울에서 250여 명의 남북 음악인들이 함께 모인 남북송년음악회라고 말했습니다.(‘우리의 소원’을 작곡한 안병원의 인터뷰에서) 안병원 작곡가가 ‘우리의 소원은 독립’을 작곡하면서 그렸던 세상은 남북송년음악회처럼 모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대면하는 세상이었을 것입니다. 평화를 외치면서 서로 만나는 것은 거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부부싸움 후 각방을 쓰면서 자신의 상처만 아프다고 외치는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는 ‘적과의 동침’이 아닌 명절 때마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처럼 ‘한가족 모임’이 이루어지길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