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어떤 포럼에 참석했다. 최근에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주제를 깊이 다룰 수 있는 전문가를 모셔 발표를 듣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포럼이 끝난 후 주변 음식점으로 이동하여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북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포럼에 처음 참석하신 분이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북에서는 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아요?” 한국에 입국한 첫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기도 하다. 솔직히 북에서 금방 왔을 때는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왜 쿠데타가 일어나야 하죠?” 적어도 북에서 살 때만큼은 쿠데타, 혹은 민중봉기 같은 것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누군가 그렇게 해주길 바란 적도 없었다. 물론 “전쟁이나 콱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았다. 특히 1990년대 경제위기로 먹고사는 일이 어려워졌을 때 상당수가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거론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유년기 어렴풋이 한국전쟁을 경험한 노인들도 있었다. 전쟁의 참화를 결코 가벼이 여겨 나온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루하루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이 얼마나 잔인했으면 이런 말들을 했을까. 그럼에도 자신들이 사는 나라,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제국주의자들의 경제봉쇄와 공화국을 고립시키려는 반동세력들의 탓”으로 여겼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전쟁이나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저 말 다음에 꼭 뒤따르는 다른 문장도 있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거잖아!” 2021년 2월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시민들이 쿠데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로 끝났다면,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부정 뒤에 따라오는 뜬금없는 승리에 대한 자신감은 자칫 모순처럼 느껴지나 사상의 변질로 추궁하기엔 모호한 측면이 없지 않다. 말은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 달려있다고, 만일 저 문장을 트집 잡는다면 그 사람의 사상성도 의심받을 수 있다. 이렇게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말을 스스로 점검하고 제어하는 모습은 아마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세뇌받은 결과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사회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구성원들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쿠데타나 민중봉기를 꿈꾼다는 것은 사실 상상조차 어렵다. 지구상에 존재했고 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독재체제는 우리의 생각보다 많다. 독재의 유형은 다르지만, 북한보다 더 길게 존재하는 독재국가도 적지 않다. 독재국가가 무너진 사례들을 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붕괴 원인이 쿠데타와 민중봉기다. 상대적으로 내전이나 혁명, 외부의 강제로 인해 체제가 무너지는 비중은 적다. 따라서 북한도 언젠가 체제가 붕괴된다면 쿠데타나 민중봉기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북한은 3대 세습에 성공했고, 만성적인 경제적 어려움과 아사자 속출이라는 무시무시한 뉴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북한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까? 쿠데타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체제에 저항하고자 하는 대중의 불만과 정치적 동기, 이를 조직화할 수 있는 리더 그리고 조직화된 세력들을 연결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 등이 필요하다. 북한 체제에 저항하고 싶은 내부적 불만과 정치적 동기가 충분히 있다고 가정한다 해도 역시 중요한 건 이러한 욕구를 조직화하고 이끌어갈 지도자다. 역사적으로 민중봉기나 쿠데타의 지도자들은 교육수준이 높은 엘리트 계급이었음을 상기한다면, 과연 북한의 지식인들은 민중봉기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북한의 지식인들은 수적으로 적고, 시간도 부족하다. 대학 진학률이 15%임을 감안하면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 직업이 교원(대학교수, 초중고 교사)이다. 북한에서 교원은 혁명의 미래를 키우는 “직업적인 혁명가”로 불린다. 그만큼 매주 해야 하는 학습량이 엄청나다. 그 학습은 대부분 혁명 역사와 계급 전통 교양 등이다. 또 매주 한 번은 ‘생활총화’를 통해 조직 앞에서 자신에 대한 자아비판은 물론 동료들을 향한 ‘호상비판’도 반드시 해야 한다. 자아비판과 호상비판 모두 날짜와 장소,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행태를 구체적으로 언급해야 하며, 원인과 앞으로의 결의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생활총화가 지극히 형식적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 의례가 주는 무의식적 긴장과 두려움의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북한의 인사관리는 크게 노동과와 간부과로 구분되는데,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간부과’ 대상이다. 즉 지식인들은 대부분 간부 대상인데, 간부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여러 형태의 정치 교육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처우가 유리한 편이기도 하다. 북한의 지식인들은 간부과 대상인 동시에 ‘동요계층’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사적인 동호회와 모임 등을 일절 금지하고, 여러 명이 주기적으로 모이면 문제가 된다. 북한은 당을 통한 일일보고(일정 직위 이상의 간부들은 일 단위로 모든 행적이 보고된다.), 행정기관을 통한 사업보고, 보위부와 안전부의 감시체계, 주거지역을 통한 신고체계 등을 이용해 비공식적인 조직화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반국가적, 반체제적 요소가 발견되는 즉시 3대를 멸하는 처벌도 여전하다. 이 외에도 북한의 민주화운동을 억제하는 요소들은 많다. 주민들에 대한 끊임없는 정치적 세뇌와 80년 가까이 구축된 북한의 사회 통제시스템은 북한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들이다. 최근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북한 MZ세대의 등장과 여러 경로로 유입되는 외부정보 등을 통해 북한 사회에 작은 균열과 변화들이 보이는 것은 나름 고무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균열들이 민중봉기나 혹은 체제 붕괴를 이끄는 세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