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0년대 후반 어느 날, 군사분계선 근처 부대로 출장 다녀오신 아버지가 저녁 식사 중에 문득 심각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적지물자가 많이 오는가 봐. 병사들이 별수 있나. 배가 고픈데. 어차피 죽을 거 한 번이라도 배불리 먹고 죽자 이런 심정인가 보지.”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을 받았다. “적지물자 손 댄 사람 많대요?” 그러자 아버지는 “거의 뭐 다라고 봐야지!”라며 한숨을 쉬셨다. “에고, 큰일이네요.” 적지물자는 대북전단을 말한다. 당시 대북전단 풍선에는 삐라(전단지)나 소형라디오 같은 정보매체 외에도 쌀, 라면, 과자류와 같은 먹을 것들도 담겨 있었다. 식량이 부족해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누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던 때였으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대북전단 풍선이 보이면 어디로 떨어질지 가늠하면서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북한 당국은 적지물자에 악성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있기 때문에 절대 손으로 만지지 말고, 나뭇가지로 모아 수거하거나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겐 적지물자를 만지다 들켜 받게 될 처벌에 대한 두려움보다 당장 배고픔을 달래 줄 식량 한 톨에 대한 절실함이 더 컸다. 대북전단 속에 들어있는 먹거리를 한번 먹어보고 죽지 않음을 학습할 수 있었던 일부는 오히려 풍선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어떻게 알아내요?” 부모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들려주셨다. 워낙 적지물자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는 만큼 섭취하거나 만졌다고 해도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간부들도 머리를 굴렸다. 캄파 주사약에 빨간 색깔의 띠를 둘러 특별한 약인 것처럼 만들어 병사들에게 보여준 다음 지휘관이 말했다. “자 이약은 적지물자에 든 악성 세균을 없애줄 수 있도록 새로 개발된 약이다. 적지물자를 먹거나 접촉한 사람들은 모두 나오라, 그러면 이 주사를 놔주겠다. 위에서도 아래 실정이 어렵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적지물자 접촉에 대해 과오를 따지거나 처벌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처음 병사들은 눈치를 보며 주뼛거렸다. 그러다 몇 명이 용기를 내 앞으로 나서자 갑자기 많은 병사가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와 줄을 섰다고 한다. “절반이 넘더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에 간부들도 놀란 모양이다. 캄파(Camphorae)는 북한에서 만능 응급약 역할을 한다. 비전공자인 내가 캄파의 정확한 성분을 알 수는 없으나, 대학시절 알러지로 피부에 심한 두드러기가 났을 때도, 중학생 때 고열로 병원을 찾았을 때도 맨 먼저 놔준 주사는 캄파였다. 어쩌면 캄파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캄파를 해독제로 둔갑시켜 병사들의 자백을 유도했으나, 심각한 현실 앞에서 지휘관들도 재발 방지나 대책을 위한 뾰족한 수를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붉은 띠를 두른 캄파 주사 한 대로 심리적인 안정감은 주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한 언론사의 기사 링크를 받았다. 북한에서 대북전단 속 USB에 담긴 한국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중학생 30여 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내용이었다. 지인은 이게 사실인 것 같냐고 물었다. 물론 나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폐쇄적인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라고 알 도리가 있겠는가. 다만 상식적으로 보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답했다. 북한은 어린이들을 “나라의 왕”이라고 부른다. 수사적 표현일지라도 미래세대에 대한 북한 당국의 기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아무리 인권 불모지인 북한이라지만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한다는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도 청소년들에 대한 당국의 관심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금까지 북한의 공개처형 대상은 다 성인이었다. 처형 인원도 대체로 3명을 넘지 않았다. 미성년자 30여 명을 한꺼번에 처형한다는 것은 그 부모와 형제자매 100여 명에 대한 처벌도 뒤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국이 얻을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이는 까닭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 30여 명의 공개처형이 언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남한 영상물 시청자에 대한 북한의 처벌 강도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음을 방증한다. 동시에 내부적인 동요에 대한 당국의 불안도 그만큼 커졌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붉은 캄파로 심리적인 안정감이라도 줄 수 있었는데, 지금 북한 당국이 자국민에게 줄 수 있는 건 공포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