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티모테오 신부의정부교구 6지구장 6지구 신부님들과 하계 연수를 어디로 가야 할지 논의한 끝에 결정한 곳이 ‘백두산’입니다. 천지를 가장 깨끗하게 볼 수 있는 시기인 9월 초에 3박4일 일정으로 연수를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여러 번 다녀오기는 하였으나, 2024년 백두산 천지는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벌써 설레임 가득합니다. 중국을 통하지 않고 직접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가면 얼마나 좋을지 아쉬움이 크게 남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관련된 일을 하면서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간 때가 2007년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중국 심양으로 가 그곳 북한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신청하고 수령하여 다시 비행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으로 입국하는 경로였습니다. 승용차로 직접 가도 2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인데 돌고 돌아 이틀을 허비해야 도착할 수 있는 너무도 길고 먼 여정이었습니다. 평양 순안국제공항의 모습 (사진출처 Flickr-Baron Reznik)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던 일정 중에 너무도 정겹게 다가왔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성탄절 즈음의 시기였는데 평양 시내 곳곳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일행은 평양 시내에 있는 기념 상품점에 들어가 있었고, 나는 밖에 나와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 아이들이 신나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파트 주변에 있는 낮은 언덕에서 아이들이 비료 포대 같은 것을 깔고 앉아 미끄럼 썰매를 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신나게 웃으며 타고 있던지…… 문득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동네 언덕에서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미끄럼을 타던 그 모습이 말입니다. 그 장면이 겹치면서 이들의 삶이 내가 살아왔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내 안에 자리하던 경계심과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위한 개성 방문과 금강산 방문도 많이 있었습니다. 개성과 금강산 방문은 철의 장벽이란 불리는 휴전선을 직접 통과해야 하기에 색다른 느낌을 주는 방문이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남쪽과 북쪽의 출입사무소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남과 북 공통적으로 출입을 위한 통로에 입경(入境), 출경(出境)이라는 이정표가 새겨져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를 통행하는 입출국이 아닌 하나의 국가로서 어떤 경계를 넘어선다는 의미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남과 북을 직접 통과할 때는 여권이 아닌 간단한 양식의 출입증을 제시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남과 북이 먼 관계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었습니다. 1991년 남과 북은 교류와 협력을 위한 매우 중요한 합의서를 채택합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그것입니다. 그 합의서의 첫 번째 항이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리고 그 인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남과 북을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입출국이라는 표현이 아닌 입경, 출경이라는 특별한 표현을 쓰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남과 북의 관계를 ‘전쟁 중인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1991년에 채택되었던 ‘남북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 서로 다른 국가임을 선언하였듯이, 이제는 남과 북 사이에서도 ‘잠정적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와 국가로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더 이상 북한의 ‘통일전선 사업부’ 그리고 남한의 ‘통일부’는 그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 가득한 선언이기는 하지만, 그 선언이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별개의 국가로서 서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관계할 것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먼저 중요한 것은 끝나지 않은 전쟁을 완전히 종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 등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고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모색하듯이 북한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하고, 당연히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종전과 더불어 완전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분단의 고착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평화 체제가 확립된 후에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서로 다른 국가로 지칭된다고 하더라도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이 더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이 통일의 중요한 초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