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얼마 전 국내의 유명한 대북 매체가 북한이 내부적으로 배포한 해설 담화자료(강의 자료)를 입수하여 내용 일부를 보도했다. 해당 강의 자료에는 “군중들 속에서 제기되는 유언비어와 동향을 정치적으로 예리하게 보고 각성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라는 김정은의 ‘말씀’도 인용되어 있었다. 강의의 대상은 국경경비사령부 산하 군관(장교), 군인, 노무자(군무원) 등이다. 전 세계가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요즘, 북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해당 자료에는 “남보다 ‘새 소식’을 많이 아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기거나, 무슨 말을 듣기 바쁘게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항상 주의를 돌리고, 그들이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교양 비판”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지난 시기 사소하게나마 유언비어를 지어내거나 퍼뜨린 행위를 한 대상들은 스스로 당 조직에 찾아가 솔직하게 자백하라.”며 자기반성을 유도했다. 북한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 특히 평소엔 만나기 힘든 지역 사람이나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북한은 사실상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고, 도(都) 경계를 넘어 이동하기 위해서는 여행증명서나 출장증명서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인이 사는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다른 지역 사람이나 해외를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듣는 소식은 TV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소식들이다. 그 소식들은 북한당국의 공식적인 강연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는 다른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새로운 차원의 신세계이기도 했다. 내가 대학으로 진학하던 해 우리 집은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옆집 아저씨는 러시아 벌목으로 3년간 해외 생활을 하고 온 사람이었다. 날씨가 몹시 매서웠던 어느 날 그 아저씨가 말했다. “로씨야는 겨울에 너무 추워서 침을 뱉으면 바로 얼음이 될 정도야. 그래도 방안에만 들어가면 더워서 내복 차림으로 지냈었는데 다시 가고 싶네.”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여기보다 더 추운데 어떻게 방안에서 두꺼운 옷을 안 입고 내복만 입고 지낼 수 있어요?” 나는 이해되지 않아 물었다. “어, 거기는 천연가스가 많아서 난방을 후끈후끈하게 돌릴 수 있거든.” 그러면 나는 또 물었다. “난방 따위로 어떻게 후끈후끈하게 덥일 수가 있어요?” 북한에도 난방이 있다. 아니, 있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일부 직장이나 학교에 스팀 라지따(Radiator의 북한식 발음)로 불리는 난방 설비가 있었다. 그 라지따에 온수나 스팀이 들어오면 칙칙~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면 “와~증기가 들어오는구나야.”하며 다들 좋아했다. 그러나 그 라지따는 1990년대 북한의 경제위기 이후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하나의 볼품없는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어느 순간부터 라지따들이 철거되기 시작했다. 증기가 들어오는 라지따 위에 누군가 올려두었던 손수건만이 라지따에 대한 나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주로 창문 밑에 자리했던 라지따 대신 투박한 재래식 벽난로가 사무실 중앙에 자리 잡았다. 심지어 아파트 방 한가운데 철판으로 만들어진 재래식 벽난로가 설치된 집도 있었다. 온돌이 놓여있지 않은 아파트에선 별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파트 방 한가운데 놓인 흉물스러운 재래식 벽난로를 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대 초반 겨울 평양에 놀러갔을 때였다. TV에서 보고 동경했던 평양과는 다른 평양의 속살에 적잖이 실망했다. 지방의 아파트들은 부엌을 개조해 구멍탄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으나, 평양 아파트는 개조할 수 없게 통제하다 보니 그런 자구책이 나온 것 같다. 그마저도 미관 때문에 도로 쪽으로는 배기관을 뺄 수 없도록 했다. 집에 벽난로를 설치할 수 없는 집들에선 뜨거운 물을 10리터, 20리터짜리 물통에 담아 이불속에 넣어 함께 잠들었다. 이처럼 북한 주택의 난방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겨울에 내복만 입고 덥게 보내는 상황을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북한 아파트 내부 © KBS 1TV '남북의창' 2000년대 북한으로 물밀듯이 들어온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도 정말 신기한 장면들이 많았다.그중 하나가 은행 ATM에서 현금을 찾는 장면이었다. 친구와 그 장면을 놓고 한참을 토론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설정은 분명 부자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인데 기계에서 저렇게 돈을 척척 꺼내나. 당시엔 정말 신기한 세상처럼 보였었다. 어쩌다 평양이나 국경 쪽에서 사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로 오면 다음 날은 모두 그 집에 모여들어 새 소식을 들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사는 형편도 궁금했지만, 그보단 해외 소식을 들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요즘은 휴대전화가 생겨 다양한 소식과 정보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빨리, 더 많이 유통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TV를 통해 방영되는 내용이 흥미로울 리가 없다. 또한, 사람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은 사실(Fact)과 함께 그 사실에 대한 주변 동향이나 해석이 덧붙기 마련이다. 북한당국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그에 대한 해석이 당국이 의도한 방향과 다르다면 유언비어로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듯이 가짜도 섞여 있다. 문제는 ‘사실’과 ‘유언비어’를 가르는 기준이 진실 여부가 아니라 각자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고 있듯이 이러한 문제는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지구인 모두가 직면한 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