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 [ JSA성당에서 포럼 참가자들과 함께 ]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지난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미일 청년의 역할과 피스빌딩 연대’라는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습니다. 2017년부터 해마다 치른 국제행사에는 주로 한미일 교회의 고위성직자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했지만, 특별히 올해에는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는 행사를 마련했습니다.한국, 미국, 일본,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40여 명의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국적만큼 다채로운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공이나 하는 일도 다양했는데, 핵군축에 관해 논문을 쓴 신학자, 평화학 연구자, 진보적인 평화 활동가도 있었던 반면에 미국 국방부에서 근무하는 교포도 참여했습니다. 도쿄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과 ‘평화의 섬’ 오키나와에서 온 청년들도 이번 포럼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평화 운동가’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 청년들도 멀리서 온 손님들을 맞아 수고가 많았습니다.초기 기획 때부터 논의한 대로 포럼의 가장 핵심적인 일정은 ‘현장 방문’이었습니다. 여섯 개의 조로 나누어진 한·미·일·영의 청년들이 소성리, 대전 골령골, 철원, 교동도, 군산, 삼척 등의 ‘현장’을 순례한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와 안보, 개발 등의 이슈를 둘러싼 갈등의 현장, 그리고 적대하고 있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청년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포럼 직후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국제 정치를 전공한 미국 청년이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현장 방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국제 관계를 공부하는 우리에게는 고위급 정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느낄 기회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수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경험을 전쟁 게임과 전략적 의사 결정으로 추상화하여 안보와 분쟁 연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철원, JSA 등에서의 현장 활동은 한반도 전역에서 여전히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국 정책의 영향을 일상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는 감동적인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한국 국민과 연대하는 이들이 평화와 통일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를 볼 수 있는 CINAP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미국으로 돌아갈 때 이 경험을 함께 가지고 갈 수 있어 더욱 뜻깊습니다.” 이번 포럼의 또 다른 특징은 여러 해 동안 연구소와 함께해온 젊은이들이 기획과 진행을 맡았다는 점입니다. 최근 개발된 평화교육 프로그램도 선보였는데, 시뮬레이션 역할극 성격의 ‘피스 게임’은 연구소의 미국인 청년이 진행했습니다. 이날 프로그램의 의도는 참가자들에게 동북아 국가들의 대표단 역할을 수행하게 하여 협상, 합의 도출, 외교 기술을 배우고, 더 나아가 주어진 주제에 따라 동북아시아의 젠더, 평화, 안보 역학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가 장벽이 되기도 했지만, 청년들은 각자가 맡은 국가를 대표하며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직면하고,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협력을 모색했습니다. 그런데 ‘피스 게임’ 중 일본의 과거사 인식 문제로 인해 다소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주어진 시나리오에 따라 일본 대표자 역할을 맡은 청년들은 계속해서 사과를 거부했고, 다른 나라 대표단들은 일본을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결국 피스 게임이 끝난 후, 한국 친구들 사이에서는 일본 젊은이들이 불편했을 것이라는 걱정이 나왔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본이 유독 나쁜 국가로 묘사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짜’ 일본 참가자들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겠다는 우익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의 프로그램 시나리오가 이러한 ‘역동’까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저는 의도치 않게 상처받을 수 있었던 청년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에서 또한 평화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끊이지 않은 세상, 서로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가 더 커지는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포럼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 방문’ 발표회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정말 ‘역동적’이었던 피스 게임을 통해 평화에 대해 조금 더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고, 다른 의견과 입장이 충돌할 수 있지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이 얘기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자리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