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 프란치스코(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강대국끼리 왜 대결을 벌일까?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권투로 치면 훅이나 강펀치를 날리기 위해 잽을 주고받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어떤 발톱을 숨기고 있는지 탐색하기 위해 우선 말로 떠보는 셈이지요. 이제까지 미·중이 서로 주고받은 말들을 보면 일단 미국이 중국을 계속 압박할 것임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적당히 받아치면서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요. 이런 사태를 보면서 다들 궁금해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 강대국들이 서로 싸우는가 입니다. 저도 공부해보니 국제정치학에서는 이 질문이 가장 기본적이고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복잡한 이론들을 다 생략하고 핵심만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강대국들이 이러는 이유는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남 밑에서 일하면 자기 뜻대로 무슨 일을 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승진하거나 소유주(owner)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이처럼 국가들도 처음에는 생존을 목표로 삼지만, 이 목표를 이루면 영향력을 더 확대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오래도록 다른 나라들의 도전이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제일 힘이 강했던 나라’(=패권국)가 약해질 조짐이 보이면 이등 국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 듭니다. 이등 국가도 일등 국가가 가진 욕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일등 국가는 그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등 국가는 일등 국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게 됩니다. 현재 일등 국가는 현 상태를 유지해야 이익이니 ‘현상 유지’를 바랍니다. 이등 국가는 현재 상황을 깨트려야 자신이 유리해지니 ‘현상 타파’를 목표로 합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이 현상 유지 국가이고 중국이 현상 타파 국가입니다. 이렇게 이등이 일등을 치고 올라가며 힘을 역전시키려 한다는 것이 ‘세력전이론’입니다. 이 이론에서는 이등이 일등과 자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역사를 보면 평화롭게 교체되는 경우도 있었고, 전쟁을 치룬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쟁을 치루지 않은 경우에도 일등은 큰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미·중 대결에도 적용된다 하겠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빠지면 어떻게 될까?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에서 균형자(balancer)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균형자는 이 지역에 사는 나라들 사이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나라를 가리킵니다. 동아시아에 중국, 러시아, 일본, 대만, 북한,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데 현재는 중국, 러시아, 북한 세 나라와 미국, 우리나라, 일본, 대만 네 나라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미국이 발을 빼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이 우리나라, 일본, 대만을 받쳐주었는데 이 힘이 빠지면 그 힘만큼 어느 나란가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미국 다음으로 힘이 센 중국이 그 빈자리를 메우려 할 것입니다. 중국이 그 자리에 들어서면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만은 당장 위협받을 것이고, 우리도 북한과 중국의 압박으로 매우 힘들어질 것입니다. 일본도 곧 중국 영향권 안에 들어갈 것인지 다른 지역의 힘센 나라와 동맹을 맺어 대항할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균형이 급속히 무너지고 중국이 이 지역 패권국이 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까지 중국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 반씩 나누어가질 것이고, 미국 안보도 직접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안보뿐이겠습니까?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도 크게 약화되어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맹주 정도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중국이 이 정도의 힘을 갖게 되면 미국이 세계 정치에서 행사하던 영향력도 크게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이 지역을 넘어 세계 전체의 균형도 무너트립니다. 그러니 미국이 이 지역에서 균형자로 있는 것은 미국 편에 선 나라들과 미국의 사활적 이해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미국은 이런 미래를 예견하기에 이 지역에 살지 않으면서도 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자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일본, 호주와 함께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을 봉쇄하고, 태평양을 넘어 인도양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 합니다. 이것이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입니다. 중국의 힘이 커지는 만큼 미국의 대응도 빠르고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은 미국의 본원적(=핵심적) 이익에 직결되기에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중국 봉쇄에 이견이 없습니다. 방식의 차이만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 미·중 대결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아마도 어느 한쪽의 힘이 빠져 굴복할 때까지 계속되겠지요. 이는 한반도 평화, 남북통일이 더 먼 미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가치 동맹을 강조하는 이유 미·중 대결을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의 대결로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중 대결을 냉전의 연장에서 보려하지요. 하지만 미국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의 대결로 봅니다.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이 적으로 지목한 나라들은 다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미국은 공산주의와 대결하려 하였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전체주의와 대결하였으며, 종전 후에는 공산주의와 냉전 대결을 벌였습니다. 탈냉전 시기에는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들과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매번 어느 한 나라가 한 지역에서 패권국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이를 막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과거처럼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이 아니라 미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따르는 나라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의 대립으로 미·중 대결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치 동맹입니다. 애초 패권국은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를 위한 명분을 언제든 만들어 낼 뿐이지요.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로 이런 상황을 이해하려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세계는 변했고, 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사고가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을수록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눔 주제 1. 바이든 행정부 때 미·중 대결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하시나요? 2. 미·중 대결 구도에서 우리 교회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