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베드로)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겸 민족화해센터장 계엄과 탄핵! 지난달 갑자기 국내 정세가 혼란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일상적이고 문제없던 상황에서 일어난 뜻밖의 계엄이었기에, 오히려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계엄은 해제되었고, 비극적이고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를 국내 언론과 외신들은 시민들의 뛰어난 민주 시민의식으로 꼽았습니다. 외신 기자들은 한국의 시위 문화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라가 어두우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오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어둠을 비추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모든 시민의 마음에는 평화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 평화의 외침은 힘과 공권력과 심지어 계엄마저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 내란죄 윤석열 퇴진! 시민촛불 © 연합뉴스 ] 집에서 가장 밝은 빛을 들고나와 사회와 세상을 밝게 하는 이 희망의 빛이 올 한 해 동안 우리 삶을 비추어주었으면 합니다. 올해 교회는 희년의 삶을 지냅니다. 희년을 시작하는 성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이 말씀은 희년의 주제인 ‘희망’을 보다 명확히 표현해줍니다. 어려움을 딛고 한발 한발 목적지에 다가가는 순례자들, 그 순례자들의 마음에는 희망이 채워져 있습니다. 2025년 희년의 주제는 “희망의 순례자”입니다. 로고의 형상을 보면 일렁이는 풍랑 위에서 네 명의 순례자가 줄지어 십자가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그 십자가의 아랫부분은 희망을 상징하는 닻의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희망의 닻은 어둠과 풍랑 속에서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와도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희년 칙서에서 희망의 징표들을 알아보도록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그 첫 번째 희망의 표징은 바로 전쟁에 있습니다. “희망의 첫 징표는 전쟁의 비극에 휩싸여 있는 이 세상에서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어야 합니다. 과거의 참상에 둔감해진 인류는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해 있습니다”(교황 희년 칙서, 8항). 전쟁은 우리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새해의 희망으로 우리는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분쟁과 다툼들이 하루빨리 멈춰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희망의 희년을 맞이하는 올해 또한 평화의 희년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왔던 우리 시민들처럼, 신앙을 지닌 우리는 세상이 어두울 때 가정과 교회에서 가장 밝은 것, 즉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 다시 말해 평화의 빛을 들고나와 세상을 비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