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모세)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덕소성당 협력사제 20세기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1915-1968)의 ‘평화론’을 소개하는 임무를 맡았다. 막무가내로 거절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교구의 민족화해위원회의 중책을 맡고 있는 동창신부의 부탁을 차마 물리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서 앞이 깜깜했다. 턱없는 역부족을 느낀 탓이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어쩔 수가 없다. 서평에는 미치지 못하고, 더듬더듬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다. 양해를 구한다. 저자와 시대 배경 『머튼의 평화론』의 원제는 ‘포스트 그리스도교 시대의 평화’(Peace in the Post Christian Era)이다. 저자인 토마스 머튼은 1941년 12월 10일 미국 켄터키주에 위치한 트라피스트회의 겟세마니 성모수도회에 입회하여 1968년 12월 10일 태국에서 불의의 사고로 하느님 품으로 되돌아가기까지 꼭 27년간 봉쇄수도회의 수도승으로 살다 간 인물이다. 수도생활을 시작한지 6년이 지난 1948년 출간된 『칠층산』과 그 이후 진정한 수도승이요 관상가로 성숙해가는 여정을 그린 『요나의 표징(토마스 머튼의 영적 일기)』 등의 자전적이며 솔직담백한 영성적인 글이 널리 알려져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을 방문하여 의회에서 연설할 때에 미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인물 중 하나로 꼽은 이가 바로 토마스 머튼이다. 하지만 그의 ‘평화론’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머튼은 이 ‘평화론’을 1962년 4월에 탈고했다. 베를린 장벽을 낳은 1961년 베를린 위기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사이에 이 책이 쓰여진 것이다. 그 시대는 미소 양국이 핵무기뿐 아니라 대규모의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를 개발 비축하던 때였다. ‘평화’라는 단어는 불온시 되었고, 이를 언급하면 ‘빨갱이’ 취급을 각오해야 했다. 뒤늦게 이루어진 출판 머튼은 이 책을 1962년에 출판하고자 했다. 하지만 장벽을 만나게 된다. 그가 속한 ‘베르나르두스의 엄률 시토회’(트라피스트회)의 총아빠스였던 돔 가브리엘 소르테스 신부가 출판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더불어 총아빠스는 머튼에게 ‘전쟁과 평화 문제에 관해 더 이상 글을 쓰지 말라’고 편지를 보내왔다. 기도하는 수도회의 수사가 쓰기에 적절한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의 전통에 따라 충실히 기도하라는 당부도 곁들여졌다. 하지만 머튼의 생각은 달랐다. 수도자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고, 세상의 쇄신을 위한 역할과 의무를 가진다고 본 것이다. 머튼은 이 상황에서 크게 고민했지만 장상이 가하는 제약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일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으리라 신뢰하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튼의 직속 관구장이던 돔 제임스 신부는 급진적인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총아빠스의 금지령이 상업적 형태의 대중용 출판에만 해당”되며, 따라서 소수 회람용의 등사본 책자로 제작 유포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으며, 대중용 출판이 아니므로 수도회 전체의 출판 검열을 득할 필요도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등사본으로 제작된 초판 수백 부가 머튼의 지인들 그리고 교회 안팎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우송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후에 바오로 6세 교황이 될 밀라노의 몬타니 추기경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관련자들도 들어 있었다. 이는 공의회의 13번째 초안에 들어 있는 ‘전쟁문제와 교회의 역할’ 등에 영향을 끼쳐, 최종적으로는 공의회의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80항에 담겨진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그리스도교 시대의 평화』는 마침내 2004년에 정식 출간되었다. 쓰여진지 42년 만에, 머튼 서거 후 36년 만에 대중용 출판이 이루어져 우리 손에도 쥐어진 것이다. 한국어로는 성공회대학교의 조효제 교수의 번역으로 분도출판사에서 2006년에 첫 출간되었다. 행동하는 관상가 머튼 1960년대에 들어 머튼은 사회 참여적인 여러 글을 쓴다. 종교 간의 대화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머튼이 깊은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봉쇄 수도원의 담장 안에서 드넓은 세계를 만나고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참으로 행동하는 관상가요 신비가였다. 『머튼의 평화론』을 거듭해 읽으며 위대한 영성가의 면모와 수준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시금 배우고 있다. 머튼은 핵무장을 비롯해 대량살상 무기에 의한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다수의 관련 자료를 깊이 있게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을 섬세하면서도 집요하게 천착하며 하나하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의 정성스러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머튼의 평화론은 짐 포리스트의 서문에 더하여 17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으로 11개월 동안 중요도에 따라 그 가운데 11개의 장을 선택하여 살펴볼 수도 있겠으나 역량과 정성 면에서 모두 부족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큰 테두리에서 책의 전체 내용을 하나씩 소개해 나가겠지만 때로는 몇몇 쟁점들에 대해 나름대로 좀 더 검토하고 정리해서 나누어 보는 시간도 가지려 한다.